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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서유럽(이탈리아,프랑스,스위스,영국)

[유럽기행 10] 돌아오다, 런던에서 한국으로

10편으로 나누어진 40쪽짜리 여행기를 마친다.

읽어보며 올리다 보니 그 날의 느낌이 새록새록~~

세월이 흘러도 남는 것은 글과 사진이다.

그 때 찍은 아나로그 사진들도 시간이 여유로워지면 스캔해서 올릴 예정이지만, 당분간은 엄두도 못낸다.

사진이 있는 것도 좋지만 상상력으로 그려보는 글이 역시 최고인지도 모르겠다.

 

 

세기를 넘나든 눈물의 유럽여행기 완결편

[유럽기행 10] 돌아오다, 런던에서 한국으로

2000년 1월 1일 새해 새아침

 

7시 40분. 잠이 깼다.

일어나기 싫어서 게으름을 떨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8시, 아침 식사를 하라고 하신다. 북어를 넣은 미역국 맛이 시원하였고, 혼자서 아침을 먹었다. 교회에서 떡국을 먹어서 안 드신다고 하였고 애들도 배가 부르다고 하였다. 오후에 출발할 예정이므로 오전엔 더 쉬기로 하였다. 주인 아저씨는 아마 내가 아니었으면 늦잠을 주무셨을 텐데 손님이 있어서 일찍 서두르셨을 것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약을 잘 맞춰서 먹어야 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느 새 다시 잠이 들어버렸다. 일어나니 11시쯤, 온 식구가 다 자고 있었다.

 

 

12시가 되자 다시 점심을 먹었다. 다시 미역국을 먹었지만 맛있게 먹고, 약도 잘 챙겨 먹었다. 이제 2시에 가이드가 온다고 했으니 슬슬 준비해서 갈 일만 남았다. 거실에서 식구들이랑 얘기를 나누었는데, 주로 미술에 대한 얘기였다. 아이들도 아빠를 닮아서인지 그림 솜씨가 대단했다. 집안 여기 저기 붙어 있는 그림을 둘이서 그린 것이라고 했다. 역시 예술적 재능은 유전적인 요소가 큰 것 같았다. 하긴 보고 듣는 게 미술이니 유전이 아니어도 감각이 발달할 것이다.

 

 

그리고 집에 책들이 빼곡이 들어찼는데 성경에 대한 것이 많아서 물어보았더니, 석사 과정으로 기독교 미술사를 연구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국에서 사올 책들의 목록을 부인에게 메일로 오늘 중으로 다 보내야 한다고 하였다. 부인도 교회 일에 아주 열심이기 때문에 자기들은 기독교가 생활화되어 있다고도 하였다. 한국에서 스캐너로 떠서 보낸 애들 외할머니 사진과, 애들이 방학 때 서울에서 찍은 사진들이 액자에 잘 놓여져서 한국의 어느 집에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가이드는 3시에 도착하였다.

 

드골 공항은 정말 규모가 엄청나게 크고, 멋있는 곳이었다. 우리 나라 김포공항은 너무 초라하게 생각될 정도로 프랑스인들이 공을 들여 지은 건물이었다.

대한항공편이 없기 때문에 생돈을 들여서 에어프랑스 비행기티켓을 사야만 했다. 그리고 편도를 사면 더 비싸다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었지만, 왕복티켓을 사서 890프랑을 역시 카드로 지불하였다. 속이 쓰려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어쩌랴? 6시 비행기라 짐을 런던에서 한국까지 부치고, 세금을 면제하는 텍스프리 영수증을 우편함에 넣는 일까지, 절차를 다 밟고도 시간 여유가 있었다.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하였다.

깨끗하고 산뜻한 실내였지만, 비행기는 단거리용이라 우리나라 국내선처럼 자그만 했다. 주로 KAL이나 아시아나만 이용하다가 다른 나라 비행기를 이용하니 느낌이 조금 새로웠다. 해는 짧아 금방 어두워져서 노을은 조금 밖에 볼 수가 없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6시, 프랑스보다 한 시간 늦으므로 도착시간이 바로 현지 시각으론 같은 시각이 된 것이다. 도착하니 난감했다. 런던 공항은 터미널이 여러 개여서 문을 나와서 이동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 여기저기 헤매다 결국 묻고 물어서 제3터미널로 찾아갔다.

 

 

대한항공에 티켓 확인을 하였는데, 이 티켓도 여행사의 티켓은 할인권이라 570프랑(우리 돈 8만원정도)을 더 지불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나라 비행기인데도 직원은 영국인이었다. 짐을 제대로 붙인 것도 확인하고, 도착 시간을 물어보려는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튼 일을 봐야하니 배웠던 단어들이 떠올라 제대로 몇 마디 하며 마쳤다. 그리고 1시간 반 정도 여유가 있어서 그냥 공항 내 면세점에서 쇼핑을 했다. 아직 준비 못한 식구들이 신경이 쓰여서 이것저것 돌아보았지만 비싸기만 하고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만두었다. 과자와 머리띠, 물만 사서 마시고,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아이쇼핑만 즐겼다.

 

 

공항이 물건만 파는 쇼핑센터처럼 상점들이 너무 많았다. 역시 장사 속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번쩍번쩍 잘 진열된 물건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유혹하였을까? 화장품, 전자제품, 시계, 악세사리, 보석, 양주 등 많은 품목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동 쪽의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곳에 갔더니 실크로 된 긴 스카프들과 구경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동전을 넣고 집에다 전화를 하였다. 선불카드를 다 썼기 때문에 수신자부담으로 하였는데, 1월 1일, 도착시간을 알려주니 마중을 나온다고 하였다.

 

 

저녁 9시, 이제 모든 일정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비행기는 올 때와 같은 크기의 대한항공, 반겨주는 승무원들이 무척 반가웠다. 올 때는 경유지를 거쳤지만, 갈 때는 논스톱으로 서울로 간다. 서울시간으로 1월 2일 오후 4시쯤이면 도착한다고 하니 10시간쯤 걸릴 예정인가보다. 비행기를 타자 말자 나는 시계를 한국 시간으로 고쳤다. 기내식은 비빔밥을 먹었다. 고추장에 비벼먹는 맛이 역시 최고다. 창밖을 보아도 깜깜한 어둠일 뿐이어서 잠을 자기로 하였다. 오전에 좀 자긴 했지만 어젯밤에 많이 자지 않아서 피곤했고, 약을 먹었더니 잠이 와서 여유 있는 좌석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모포를 덥고 가능한 한 편한 자세로 잠을 잤다. 30명이 뭉치고, 여섯이 정을 나누며 가던 길이었는데, 돌아오는 길은 쓸쓸히 혼자이다.

사람의 앞일은 예견을 못한다더니 내가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건강이 역시 최고다. 여행에서는 음식물이 정말 문제야. 이런 생각들이 꿈속에까지 나타날 정도로 나는 단잠을 잤다. 그러나 긴 시간은 아니었나보다. 어느 순간 창밖을 보니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여명. 저 멀리 아련한 황금빛, 높은 곳엔 그믐달이 눈부시게 뜨고, 샛별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점점이 뿌려진 별들은 빛이 흐려지고 있었지만, 점점 하얗게 빛나는 달, 그리고 점점 더 짙어지는 황금빛 저 편, 그리고 붉은 기운의 출현. 아침 노을과 저녁 노을은 정말 닮아 있었다.

 

 

갈 때는 끝없이 펼쳐진 저녁노을에 취해서 갔는데, 돌아올 때는 아침노을에 빠져서 돌아오다니! 비행기 여행의 진수를 보는 듯 하다. 구름에 따라 역시 노을빛은 변화무쌍하다. 무더기로 피어난 구름 위에서 주홍빛 비단을 깔아놓은 듯 하고, 군데군데 흩어진 구름들 사이에선 보라색, 혹은 무지개빛으로 반짝이며, 구름 한 점 없는 곳에선 드넓은 바다 위 수평선자락에 드리운 붉은 망사 같았다. 이어진 듯하면서도, 새록새록 새로워지는 새벽, 새해벽두부터 병원 신세 지며 액땜을 하였으니, 나머지 모든 일은 잘 될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점심을 먹고 다시 잠이 들었다.

햇살은 따사롭게 비춰주고 있을 때, 짐 정리를 하고, 콜라를 청해 마시고, 그래도 도착은 멀었나 보다. 시를 더 읽고, 건강을 항상 조심하리라 다짐하면서, 낯익은 도시로 접어들었다.

 

 

오후 4시 30분, 드디어 김포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짐 기다리는 시간은 무척 지루하였다. 그러나 기다리고 있는 남편 얼굴을 보니 힘이 솟았다. 얻은 것도 많았고, 갑작스런 병으로 눈물나던 유럽 여행, 이제 드디어 끝이 났다. 다음엔 더 자세히 볼 것을 다짐하며, 공항을 빠져 나오는 길은 새로운 희망이 솟아올랐다.

"아, 눈 내리네!"

갑자기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나의 새해를 반겨주는 서설이다.

"유럽이여 안녕! 내가 다시 갈 때까지!"

 

출처 http://club.cyworld.com/ClubV1/Home.cy/50165791

런던브리지인데 진짜가 아니고 부천 아인스월드의 모형을 찍을 것이라고 한다.

원래 예정에는 런던 여행이 포함되어 있어서 런던 구경은 못하고, 공항을 밟는 것으로 그쳐서 아쉽다.

언제 또 기회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