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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송화松花 피는 언덕

일에 매여 살면서도 늘 내 몸은 자연을 탐한다.

출근길이 아무리 멀어도,

이맘때의 자연이 가장 아름다워 행복을 느낄 때가 많다.

아, 연둣빛 물이 오르는 은행나무,

꽃 진 자리에서 연둣빛으로 더욱 싱싱해져 피어오르는 개나리, 벚나무, 진달래....

하다 못해 이름모를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조차 싱그러움으로 새로워지는

그야말로 계절의 여왕 5월이다.

이양하 님의 '신록예찬' 구절이 더욱 새로워지는 5월이다.

어디를 보아도 연둣빛 잎들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니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시간에 쫓겨도 숨통이 트이는 것이다.

송화松花 피는 언덕

겨울을 지킨 소나무잎들이

연둣빛 새순을 떠받들어 하늘에 기도를 올린다

경건한 마음으로

초록 촛대를 들고서

정성이 부족할까

새순 끝에 그저 작은 분홍빛 꽃송이 하나 떠받들고

새순 줄기엔

노란 인절미 작게 잘라 오종종 꿰어놓고

봄바람에 몸을 맡기고

말랑말랑한 몸을 굽혀

기도한다

딴에는 가장 화려한 옷을 입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암꽃이

새순 끝에서 순수한 기를 모으기에,

스폰지처럼 말랑말랑한 수꽃들이

꽃샘바람에 몸을 내맡겨 한 송이 암꽃을 위해 버티었기에,

연둣빛 새순은 가장 밝은 빛으로 자라

솔방울을 맺게 하리라

누가 송화를 아름답지 않다 했던가?

남들이 숨을 죽인 겨울에도

매서운 칼바람을 견딘,

화려하지 않은 소나무 한 그루가

계절을 오롯이 지키듯이

그저 말없이

초록 촛대에 불 밝히고

송화꽃 향기 맡으며

묵묵히 기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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