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분갈이와 인생, 그리고 개학

몇 년 동안의 숙원사업을 해결했다.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 땀을 비처럼 흘리며 화분들을 정리하고 분갈이를 했다. 방학이 시작할 때부터, 화분, 자갈, 인공토, 마사토 등을 조금씩 실어날랐고, 목요일에는 농장에 가서 모자란 것을 더 실어왔다. 원래 토요일이 D-DAY로 잡혀 있었는데, 그 전날 개학준비로 대청소를 하고, 퇴임식까지 하고 밤늦게 밀리는 길을 달려오다 보니, 정작 토요일엔 온몸이 다 쑤셔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비도 내리고~~

이번 여름방학은 근무의 연속이었다. 12일간 쉬었는데, 짧은 시간이라도 가족들과, 또 딸과 여행을 했고, 너무 더워서 도저히 일을 벌일 수가 없었다. 지금이 새벽이니 30일, 개학날이라 설레는 마음인지 4시에 잠이 깼다. 사실 몸이 너무 피로해서 잠이 깬 것이기도 하지만....나는 큰일을 앞두거나 개학날 등이 되면 사실 시간마다 깨곤 한다. 소풍가는 아이처럼....날씨가 걱정되기도 하고....

일요일, 눈을 뜨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몸도 무겁지만 비는 사람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여, 어디로 나서기를 망설이게 한다. 때론 시원해서 뛰쳐나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할 일을 위해서 나가기란 쉽지 않은 듯....오전엔 미적거리다가 남편 점심을 챙겨주고 나니까 이러다간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딸을 독촉하여 집을 나섰다. 너무 오래되어 질린 화분들의 화초들을 뽑아서 새화분들에다 걸쳐 놓고, 잘 싸서 다 싣고 화원으로 향했다. 발산역 근처에서 화원을 하는 삼촌댁을 향해서, 오랫만이라 복숭아 한 박스 최고 좋은 것으로 사서 싣고 달렸다. 그런데 웬일? 그 화원이 즐비하던 곳이 막이 쳐 있고, 공사중이다.

이런! 일요일이면 늘 가게문을 열었던 터라 전화도 않고 갔더니, 낭패였다. 부랴부랴 전화를 했더니 숙모가 받으셔서, 6월부터 가게 그만 두고 김포에 있는 집에서만 활동하신단다. 이미 나선 길, 보고 싶기도 하고 과일도 사뒀으니 들르겠다고 하고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전에 두어 번 가보았는데도 영 헷갈려서~~~

그렇게 세차게 내리던 비가 뚝 그치고 하늘이 밝아졌다. 싱그러운 들판을 달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 우리 드라이브 하라고, 비가 뚝 그치네!"

"그러게 말야 엄마, 너무 기분 좋다 그치?"

딸과 나는 룰루랄라 김포대곶으로 향했다. 말이 김포이지, 강화 바로 직전 초지대교 근처라 꽤 멀었다. 딸은 너무 멀다며 툴툴거렸지만, 이미 나선 길 뭐 어쩌랴? 새집 짓고는 못 가보았는데, 전에는 빈 터이던 곳에 멋진 집이 들어섰고, 마당과 1층은 온통 꽃천지였다. 서울 가게 쪽이 개발되어 공사가 들어가면서 그곳을 접고 이 곳 집에다 가게를 차렸는데, 그 곳에 있을 때 보다 장사가 더 잘 된다고 하셨다. 축하화분은 덜 나가는데, 주변의 펜션이나 별장, 기타 음식점 등에서 야생화나 예쁜 꽃들을 한꺼번에 많이 주문을 해서, 매출은 훨씬 좋아졌다고 하셨다.

넓은 마당에는 벌개미취 화분이 무성하여 가을 향기가 물씬 풍겼다. 그 뿐 아니라, 변종인 듯한 빨간 무궁화, 노랑무궁화, 갖가지 꽃들이 내 눈을 어지렵혔다. 꽃을 너무 좋아하는 나니까! 회사 다니다가 그만 두고 가업을 잇고 열심히 하고 있는 사촌동생네 아들 둘은 그새 무척 컸다. 작년에 다른 사촌동생 장례식 때 아이들은 못 보아서 정말 오랜만에 보았더니, 어찌나 컸는지....암튼 삼촌 내외분은 반갑게 맞아주셨고, 뒤늦은 점심으로 국수를 맛있게 말아주셨다. 좀더 시간 많을 때 가서 도와드리고 더 놀다 왔으면 좋아하셨을텐데....결혼 전에도 가끔 서울와서 일을 도와드리기도 했고, 결혼 초에는자주 가서 놀기도 하고, 일도 도와드렸는데 요즘은 내 시간이 워낙 바쁘니, 몇 년에 한 번 갈까 말까하다.

내가 부지런은 떨 때는 해마다 분갈이 하면 거기 가서 다 갖다 쓰고 이야기하며 돕고 그랬는데....요즘은 화초들을 거의 버려두다 시피 했으니....1층은 완전히 터서 가게로 하고, 이층은 살림집인데. 올해 그렇게 더워도 선풍기 3-4일 밖에 안 틀었다고 한다. 새벽에는 꼭 이불을 덮고 자야 하고...

"아!바다다! "

딸과 나는 동시에 탄성을 질렀다. 테라스로 나가니, 강화도가 보이고, 바다가 보여서 너무 좋았다. 3층은 아직 집이 덜완성되었지만 더 탐이 났다. 2층은 철책이 시선 높이로 보여서 조금 안타까웠는데, 3층은 확 트여서 너무 좋았으니까....빨리 완성해서 나에게 임대 좀 해 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시간은 3시가 지나 있었지만 아침은 늦게 먹어 괜찮다는데도 어른들 맘은 안 그런지 국수를 삶아서 굳이 먹으라고 난리셔서 맛있게 먹고, 과일과 차를 마시며, 귀염둥이들의 재롱을 보았다. 녀석들이 갑자기 손님이 오니 흥분이 되었는지 뛰어다니더니 둘다 넘어져서 한 녀석은 코가 빨개지고, 한 녀석은 이마에 혹이 생겨 안스러웠다.

화분을 펼쳐 놓고 와서 빨리 가야 된다고 일어서니 아쉬운 맘이 앞섰지만, 이것저것 챙겨주셨다. 차에 화분이 가득하다. 온시리움. 호접란, 무궁화, 스킨다비스, 다양한 채송화 걸이 화분....원래 목적은 실내용 거름과 진득이 약을 가져오는 거였지만, 항상 가면 화분을 잔뜩 챙겨주신다. 딸아이는 왜 이렇게 많이 주시냐며 어쩔 줄을 모른다. 울 큰 딸은 너무 양심적인 편이고,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질색을 하는 터라... 사촌동생이 걱정 말라고 맘에 드는 것 있으면 말하라고 해도, 주신 것만 해도 너무 많다고 난리다. 죽이면 어떡하냐고, 그럼 또 가져가면 되지 걱정이냐고....전에는 란과 관엽식물을 많이 하셨는데, 관엽쪽은 사촌동생의 하우스에서 많이 취급하나 보다. 그 쪽에는 바빠서 못 가보았지만, 원래 주 농장이 그 곳이었기에 그 곳의 풍경은 눈에 선하다. 지금은 좀 바뀌긴 했을 테지만....

젊은 사람이 힘든 농사일을 마다않고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정말 기특하다. 애들 교육상 집은 서울에 있고 출퇴근을 하지만, 화원 일이라는 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닌 것을 나도 옆에서 지켜봐왔기 때문이다. 삼촌은 아마 30년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살다가 서울 오셔서 화원을 시작하셨으니까. 삼촌내외분이 서울 가게로 출퇴근을 하지 않으셔서 안정되어 보이고, 더욱 편안해 보여서 좋았다. 하나 뿐인 아들이 가업을 이으니 좋고, 자립심을 가지라고, 아예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하우스를 아들에게 맡겼다고 하신다.

이 막내 삼촌은 삼촌이라고 해도, 내겐 사실 오빠 같은 분이셨다. 우리 집에서 같이 오래 살기도 했고, 나이도 8-9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삼촌과의 추억도 참 많으니까. 나훈아 흉내도 잘 내고, 노래도 잘 불렀고, 이웃에 살던 아는 언니와 연애를 했는데,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내가 편지 심부름도 많이 했다. 그 언니가 삼촌을 참 좋아했는데, 삼촌도 좋아했지만 미래가 불확실하다며, 결혼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남자들은 자기의 미래가 결정되어야 결혼할 생각을 하는 책임감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어린 나이에도 했었던....그 언니와 내가 무척 친했는데....그립다. 동네에서는 우리 삼촌이 완전히 재주꾼이었다. 여장을 하고 사람들을 무척 웃기기도 했으니까.

오늘 가져온 화분은 꽃 핀 것들이 많아 집안이 완전히 화원이 된 것 같다. 집에 오니 5시 30분, 그 때부터 밤 10시까지 분갈이를 하고 베란다 청소를 하고, 남편과 아버님은 개미가 득실거리던 예전 흙을 다 버리는 일을 맡았고, 주된 작업은 내가 했으며, 큰 딸은 나무를 잡아주거나, 내 비서역할을 했다. 물도 떠다 주고, 잔심부름을 도맡아했다. 다리에 쥐가 나고 어깨가 마비될 것 같았지만, 물청소까지 마치고 나니, 너무 뿌듯하다. 배수가 잘 되는 인공토와 마사토, 자갈까지 잘 섞어서 물 빠짐이 아주 좋을 것이다. 게다가 아주 상품의 거름흙에 심었으니 우리 집 화초들은 이제 무럭무럭 잘 자랄 것이다.

참, 또 한 가지 우리 집 화초를 내가 몇 년 동안 방치한 이유는 아버님이 화분을 다 망쳐 놓아서이다. 버티컬을 너무 열심히 열고 닫으시다보니, 억지로 열고 닫아서다 고장을 내셔서 화초에 햇볕이 잘 안 들어 화초들이 잘 못 자랐다. 그러니쳐다보기 싫었고, 두 번 째로는 역시 그 버티컬 여닫으시다가 내가 아끼던 화분대에 있던 난초 화분 10여 개를 다 깨 버리신 것이다. 내가 바빠서 그랬지만, 그냥 두셨으면 좋으련만, 어디서 싸구려 난화분을 사다가, 난석도 아닌 거름에다 심으셔서 화초들이 다 시들시들.....한 번 왜 그러셨냐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너무 미안해 하셔서 말도 못하고, 게다가 아버님이 사오신 화분들을 버릴 수도 없어서 그냥 두었으니, 난초들은 거의 다 죽었다. 화초를 공들여 아이들 친구들이 오면 "너희 집은 화원같다"고 할 정도로 화분을 즐겨 키우는 내가 얼마나 속상했을 지는, 아는 사람은 알 거다.

이제는 몇 년이 지났으니 그 난초화분 버려도 덜 서운해하실 것 같아, 오늘 과감히 다 버리고, 오래된 화분(어떤 것은 정말 20년이 넘은 것도 있으니까....)들도 이 참에 좀 버리고....그 전에 버티컬도 다 떼어 버리고 롤스크린으로 바꿨기 때문에, 분갈이를 하지 않아도 8월에는 화초들이 생기를 많이 되찾았다. 그러나 볕을 많이 못 받아서 끈적거리는 진딧물 생긴 것들이 있어서 영 맘이 좋지 않았는데, 너무 지저분한 것은 다 처리를 하고 나니, 너무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 그 틈에 자리잡은 개미집을 완전히 다 갖다 버려서 속이 너무 후련하다.

몇 년 전에 도자기 화분 바꾼 것들만 살리고, 얼마 전 부터 새로 구입한 몇 개의 화분들을 서서히 준비를 해 왔었다. 이제 베란다에 미니 실내 정원을 꾸미려고 계획 중이다. 분갈이는 했으니 차차 좀더 신경 쓰면 더욱 멋진 실내정원이 될 것이다.

이제 날이 밝았다. 4시에 잠이 깼는데 누워 있으니 정신이 말똥말똥 해서 일어나 글을 쓰자니, 사실 며칠 무리한 어깨가 말이 아니지만, 행복하다. 거실과 베란다에 한 번 나가 보니, 국화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했다. 아버님께 신신당부를 해 놓았다. 화분에 절대 거름 주지 마시라고....난 화분에도 거름흙을 막 주셔서, 벌레가 생기고....전에도 일을 시원시원하게 하시기는 한데, 꼼꼼하진 못하시다. 그 전에는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셨는데 팔순이 넘으시고 부터는 팔과 다리에 힘이 없으셔서 그런지 뭔가를 잘 떨어뜨리시고, 잘 깨신다.

원체 천하장사 못지 않은 풍채와 힘을 가지셨던 아버님께서 힘없이 그러시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슬픈 일인 듯.....마음은 청춘이신데 몸이 말을 안 들으니 얼마나 갑갑하실까? 요즘은 우리 집에서 두분이 사고를 제일 많이 치시니....그래도 바쁜 며느리가 끼니마다 챙겨주지 않아도 끼니 찾아 드시고, 여기 저기 편찮으셔서 동네 병원은 다니시지만, 병원에 입원 안하고 정정하시니, 복이라고 생각한다. 아, 하느님, 수명을 길게 주시려면, 좀더 정정하고 초롱초롱하게 오래 살게 해 주시면 안될까요? 인생은 맘대로 안되는 것.....

이제 또 일상으로 돌아간다. 아이들도 아마 잠을 설쳤을지 모른다. 금요일날, 교실바닥 공사 한 것 때문에 물건들의 먼지를 닦아 다 제자리에 넣었고, 청소를 말끔히 해 두었으니, 아이들은 바뀐 바닥과 페인트칠로 깨끗해진 벽 때문에 놀랄 것이다. 일찍 가서 아이들을 맞아야지....29년째인데도 아이들을 만나려면 설렌다. 오늘부터 당장 전쟁터를 방불할 정도로 난리를 필 테지만....

지겨운 비, 오늘도 또 내린다. 아이들이 등교할 시간에는 제발 그쳤으면 좋으련만.....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쁜 소식, 그리고 명절후유증  (4) 2010.09.25
여름 후유증, 기도 &  (6) 2010.08.31
송화松花 피는 언덕  (4) 2010.05.16
순서는 저리 가라, 나는 피어나리라  (7) 2010.04.02
외박!  (7) 2010.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