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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몸이 12개라도 모자랐던 지난 토요일

몸이 12개라도 모자랐던 지난 토요일

예식장 둘

토요일은 예식장에 갔다가, 고향친구들 모임 갔다가, 산정호수로 1박 2일

떠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 지 몰랐다.

산문 하나 쓰고 있는 것이 마무리가 되지 않아 심야까지 수정작업을 하다

새벽에 잠들었다. 깨어나니 9시, 부랴부랴 반찬 좀 만들고, 목욕하고, 청소

하고 정신없이 나를 내몰았다. 서둘러도, 결혼식장 한 쪽은 못 갈 것 같아

서 친한 선배언니께 전화를 해도 영 받지를 않는다. 할 수 없구나, 잠시라

도 들를 수 밖에 없네...

영등포에서 하는 예식장에선 그저 정말 얼굴만 내밀어 신고만 하고 부랴

부랴 양재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이 좋긴 좋다. 역 근처이니 시간은 얼마 안

걸리고 찬 바람을 맞을 일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앞 예식과 차이가 별로 안

나서 도착하니 이미 결혼식은 끝나고, 축의금 접수하는 사람도 없다. 신부

친구들의 사진촬영이 막 끝났길래, 신부에게 축하 인사를 직접 하고는 바로

식당으로 갔다.

전에 근무하던 분들과 얼굴이라도 보려고 했는데, 대장님을 비롯한 대부분

의 사람들은 이미 식사를 다 하고 떠나고 안 계셔서 서운했지만, 내가 꼭 보

고 싶은 멤버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 안받았냐고 투정을 했더니,

그래야 얼굴 본다면서 일부러 안 받았다나?

암튼 모처럼,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제는 어떤 분은 2월달 결혼하는 아들의

청첩장을 갖고 오셨고, 또 어떤 분은 유학간 딸년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

셨다. 환율이 올라서 돈이 두 배로 든다는.....오랜만에들 만나서 아쉬운 마

음 뒤로 하고 안녕을 고했다.

박장대소, 고향친구들

아이들도 한가해지는 방학, 그리고 내가 좀더 한가하다는 이유로 여름, 겨울

에한 번씩 만나는 초딩친구들 만나는 날이다. 언제 보아도 어린 시절로 돌아

가, 이 가시나, 저 가시나 하면서 맘껏 떠들 수 있는 시간이다. 친구들은 사투

리가 엄청 심하다. 명동의 그 일식집은 우리 단골집인데, 우리가 가면 제일 시

끄럽다고 하지만 우린 아랑 곳 하지 않는다. 그 시간은 마침 좀 한가해서, 주

인도 주방장도모두 용인을 해 준다. 가끔 전화 통화는 하지만, 사방 팔방에서

사니 만나기도 사실 쉽지 않다. 6명 중에서 동남쪽(분당), 중계동(북쪽), 시흥

동(남쪽), 의왕시(더남쪽) 문래동(서쪽), 응암동(북서쪽) 이렇게 사니, 같은

서울권이지만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살기 때문에 평일에는 만나기 어려운 편

이다. 게다가 나는 직장까지 더 먼 오이도쪽으로 옮겼으니...

아무리 멀어도 아이들이 웬만큼 컸으니 시간이야 낼 수 있지만, 두 명만 전업

주부이고, 네 명은 다 제 분야에서 무척 바쁘게 살기 때문에 시간 맞추기가 쉽

지 않다. 그래서 일년에 두 번씩 만나는 것으로 족하기로 했는데, 올해 부터는

네 번씩 만나기로 합의를 보았다. 만나면 이렇게 좋은데 우리가 왜 더 자주 안

만나냐면서....

이제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를 둔 친구는 마음이 바쁘고, 나를 비롯한 한 명은

느긋하다. 늦게 결혼해서 아직 아이가 없는 친구도 몇 년간 여러가지 방법으로

아기를 가지려고 노력해서 옆에서 보기 안타깝더니, 아이 신경 안 쓰고 살기로

했다면서, 이제 유유자적한 모습이라 마음이 놓였다. 입양은 고려하지 않는다

고 하니...무자식이 상팔자이긴 하다고 다들 한 마디씩 한다. 한 친구는 고3 아

들 때문에 작년에 온몸에 종기가 솟기도 했다니 말이다.

미주알고주알 그렇게 다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이 어디 있으랴? 모처럼 만나도

그래서 좋은 것이다. 서로 문제가 있으면 자주 전화도 하곤 하니, 자주 안 만나

도 늘 만나는 것 같은 친구들이다.

이번 모임에서는 초등학교 동문회에 대표로 다녀온 친구의 이야기를 듣느라 시

간 가는 줄 몰랐다. 서울에서 참석한 친구가 별로 없으므로, 대단한 환영을 받았

다고 한참을 웃었다. 어린 시절에 보고 몇 십 년 만에 만나니 그 얼굴의 변화를

보고 너무 충격적이더라는....머리가 많이 빠진 남자친구들, 하얗게 반백이 된

친구들, 그리고 주름살이 많아진 친구들....그들을 보면서, 내 친구도 자기 자신

의 거울을 보는 것이니 정말 서글퍼지더라는....

그러나, 몸은 변해가도 마음만은 어린 시절의 그 한 조각을 찾으며 스스럼없어

서 너무 즐거웠다고 한다. 서울의 친구들이 같이 가지 않아서 서운한 것 외에는

너무 좋았다고,그 친구 떠드는 소리에 2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한 번 만나면 토

요일 오후를 몽땅 수다를 떨곤 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남편과 부부동반 모임을

가야 해서 나 먼저 일어서야만 했다. 4시에 만나기로 했으나모두모인 시간은

4시 반이었는데, 이야기 별로 못 하고간다고 친구들의 원망이 컸다. 부부동반

모임인데 안 갔다가는 울 남편에게 두고두고 핀잔을 들을 테고, 다 아는 처지에

남편 기죽이면 안된다고 당연히 다들 가라고 하면서도너무 아쉬워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 중에서가장 친한 친구에게 며칠 내로 또 전화가 올

것이니 밍그적거리다가 남편과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로 갔다. 사실 남편의 모

임에 가서는 재미라기 보다는 그저 의무적일 뿐이다. 죄송하지만, 내가 자주

참석을 못해 주는 쪽이기도 하고, 나와는 원체 잘 맞질 않고 다들 아이들이 어

려서 가면 쉰다는 것보다 스트레스를 받고 오는 편이기 때문이다. 단, 어디든

가게 되니,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곳의 새로움을 느끼는 것 외에는 그

리 재미는 못 느끼기 때문이다.

산정호수의 밤

남편은 일찍부터 대기하고 있었다. 5시부터 만나자고 하는 것을 내가 친구들

에게 면목이 서지 않는다고 6시까지 만나자고 한 것이었다. 친구들 만나니 나

오기가 싫어서 30분을 더연장하여 6시 30분에 만났다. 시내에서는 혼잡하니

합정역에서 만나 출발했다. 출발이 늦으니도착시간이 늦을 수 밖에. 그런데,

우리만 늦게 출발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래도 다행이었다. 미리 펜션에 와서

기다리던 사람들은 음식을 기다리느라 허기에 지쳐 있었다. 우리가 좀더 빨리

출발한다고, 회장측에서 준비한 음식물 중 일부를 우리가 싣고 갔기 때문이다.

아무튼 최대한 빠른 길로 가서 8시 반 쯤 도착하였더니, 사람들은 기다리다 지

쳐 식당으로 나가려고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 펜션 주변에는 식당이 없는 조용

한 언덕이었기에...

우리가 준비해 간 떡과 김치, 과일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밥을 안쳐 놓고 나니,

나머지 팀도 속속 도착했다. 숯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저녁을 먹으니 12시가

다 되었다. 물론 식사만 한 것이 아니라, 모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즐거운 시

간을 가졌으니....어른이 16명,아이들이 11명, 27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뱃속을

다 채우려니 시간이 무척 걸렸나 보다. 암튼 술도 모처럼 몇 잔 하고, 전과는 다

르게 여자들끼리도 많이 친해지는 시간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몇 몇은

고스톱 판을 벌이는데, 나는 그런 분위기는 별로 안 좋아해서 방으로 들어가 잠

을 청했다. 이미 그 시간이 1시였다. 나중에 그 사람들은 분위기가 더 고조되어

주변의 산정호수 근처로 나가서 노래방을 찾아보곤 했나 본데 헛걸음을 했다고

한다. 한 때 가족들이나 모임에서 흥이 나면 새벽까지 논 적도 있었지만,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고, 요즘은 아예 싫다.

그런데 그 방에는 여자아이둘과 남자 아이 하나가 밤새도록 자질 않고 왔다 갔

다 하는 바람에 거의 잠을 자질 못했다. 그 중 4학년 짜리 여자아이한 명이 정말

압권이었다. 입담이 어찌 그리 센지...더 큰 언니, 오빠를 휘어잡으며 대단했다.

누가 치솔 찾느라고 불을 켜놓고나간 김에 아이들은 신나게 더 떠들고 난리였다.

아마 그 여자아이 한 명의 엄마였는데, 평소엔 무척 얌전한 듯, 처음엔 술을 안

먹더니 나중엔 술을 많이 마셔서 아마 취한 듯....애들 아빠는 초저녁에 술 많이

마셔서 아들 데리고 다른 방에서 일찌감치 잠들고, 엄마는 다른 언니들이랑 늦게

까지 고스톱 치면서 놀고 있었다. 내가 봤을 때 그저 한두 번 한 것은 아닌 듯한...

내가 불 좀끄고 4시가 넘었으니,이제 좀 자자고, 놀고 싶으면 거실에 나가는 것이

라고 얘기를 했더니 밖에 나가면 어른들이 있어서 혼날 것 같으니까 알았다고 하

더니, 5분쯤 뒤에, 놀러 와서 말도 못한다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선동을 하는 것이

었다. 놀러 와서 자는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니냐고...우리 애들 같았으면 혼줄을 냈

겠지만....

나중에 알고 봤더니, 어느 부부팀의 아이가 아니고, 늘 함께 친하게 지내는 집 아

이인데, 부모님이 일이 있어서 함께 데려왔다고 한다. 자기 아이가 아니니, 그 친

구의 엄마도 마구 야단을 칠 수가 없기도 했지만, 다른 집 아이까지 데려왔으면

그 엄마가 자기 아이처럼 신경을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참 걱정스러웠다.

나중에는 새벽 4시에 화장실에서 우당탕 난리를 피기에 아래층에서 쫓아올 거라

고 내가 거실로 쫓아보냈다. 그랬더니, 또 밖에 나갔었나 보다. 조용조용 다니면

누가 뭐라할까마는, 다른 손님들에게 피해를 끼칠까봐 나는 정말 조마조마했다.

아이들끼리 모이면 아이들의 세계가 있지만, 엄마 아빠가 바쁘고 이웃집에 맡겨

지는 일이많아서 그런 것 같았다. 그 아이를 맡은 엄마 역시 정말 여리고 마음이

약해보이니, 자기아이가 걔에게 휘둘려도 심하게 야단도 못 치고.....참 요상한

경우였다. 다른 아이들도 짓이 나서 함께 어울리고....

아침을 먹고 나서, 내 성질대로 하자면, 불러서 훈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밤새 난리를 피워 놓고 그애들은6시가 넘어서야 잠이들어서 밥을 먹으라고 깨

워도 일어나지 않았다.웃으면서 이쁜 여자아이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하

면서,말을 자연스럽게 꺼냈다. 다들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었던 듯, 한 마디씩 정

말 그렇다고들 했다. 밖에서는 거실에서 주무시던 남자분들도 걔내들때문에 다

잠이 깨서 제대로 못 잤다고...방에서는 더 심했다고 했더니, 짐작이 간다고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저런 애는 처음 봤다고, 대단한 명물이라고 웃으면서 말들은 했

지만, 다들 혀를 내둘렀다.

물론 우리 아이들도, 또 대부분의 아이들도친척끼리 모이면 잠도 안 자고 속닥

거리고 설치기도 한다.어른들이 한 마디 하면, 소리를 죽였다가 다시 낄낄거리

곤 하지, 그렇게 대 놓고 놀러 와서 말도 마음대로 못한다고 쫑알거리는 것은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데리고수학여행을 가도 애들은 잠을 자지 않는 아이

들이 많다. 순회를 하면 찍 소리를 안 내고 숨죽이고 있다가, 발자국 소리가 멀어

지면 다시 속닥거리고 배게 싸움하고...어느 시대의 아이들이 절호의 기회를 놓

치겠는가? 그러나, 불침번을 몇 번 서서 조용히 시키다 보면, 숨 죽이다 보면 하

나둘 잠드는 아이들이 생기고, 드디어 조용히 하룻밤이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떠들 수 있는 공간을 주지 못한 어른들도 좀더 배려를 했으면 좋았으

리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도 했다. 그렇지만, 아이들끼리 모이면 간이 커지므로,

아이들이 잘 지내고 있는 지는 꼭 감독하는 사람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모임 문화가 더욱 건전하게 정착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날이었다. 모임

은 친목도 다지지만, 쉬기도 해야지, 아이들에게 너무 치여서 참 힘들었다. 아마

우리 아이들이 다 커서 더 했을 테지만.....

그래도 다음날, 펜션 주변의 아침 산책도 좋았고, 무엇보다 산정호수의 하얀 겨

울을 볼 수 있었으니,그 피로함은 상쇄가 된 듯 하다. 다른 방에서 1시쯤 일찌감

치 잠을 자서 아침에 피부가보송보송한 남편에게, 돌아오는 길에 아이들 데려오

려면 어른들만 오는 팀에 대한 배려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이야기했다. 운전

을 안 해도 불안해서 잠을 잘 못 자는 내가, 어제는 오는 내내 쿨쿨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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