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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재경 동문회

수요일에는 재경 대학 동문회에 갔다.

교직의 특성 상, 우리 또래는 사실 동문회에 별로 오질 않는다. 우리보다 더 어린 후배

들은 아직 아이들 키우기 바쁘고, 우리 또래 역시 기별로 모인다면 모를까 전체적인 모

임에선 대체로 선배님들이 주도를 하시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엔 최근 몇 년 가까운 교장선생님께서 회장을 하시게 되어 자주 뵙는 분이

라 할 수 없이 봉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제는 정말 힘들었다. 오기로 한 친구나 후배들이

사정상 못 오거나 늦게 오게 되어 올해는 뒷선으로 물러나리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는데, 영 빗나가고 말았다.

회비 받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녹초가 되었다. 아직 무리해서는 안될 형편인데도 내색

도 못 하고 말이다. 지난 연말에는 회장님께서 동문회지 편집을 같이 하자고 하시더니, 다

행히 나는 편집회의에서는 빼주시고, 이메일로 최종본을 보내주셔서 교정만 잘 해서 보내

드렸다. 덕분에 책이 아주 잘 나왔다고, 좋아들 하셔서 보람이 있었다.

화합의 자리인데도 대선배님들의 의견 충돌이 잠시 있어서 마음이 어수선했지만, 또 잘

마무리가 되었고, 중요한 일은 차기 임원진들에게 잘 넘겼지만, 나는 아직도 이름이 걸려

있어서 걱정이다. 별로 어려운 건 없지만, 봉사하는 일에는 다들 발을 빼기가 일수이기 때

문이다. 아무튼 마무리도 잘 되었고, 수고했다고 선물까지 챙겨서들 주시는 선배님들 덕분

에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뿌듯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선배님들 중에서 나와 동명이인이 계셨다. 동문회지 표지에 실린 내 시를 보고, 다들 의아

해 했다고 하시는데, 내가 카운터 일을 다 보고 앉아서 식사를 한 후, 우리 기수들 장기자랑

시간이 되어 나갔다 오니, 옆 테이블의 선배님들께서 나를 불러 세우셨다. 다들 깜짝 놀랐

다고 하시면서.....나와 이름이 성도 이름도 모두 같은 그 분은 나 보다 12년이나 선배이셨

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셨다. 같이 둥근 테이블에 앉은 그 기수 선배님들도 나를 반

겨 주셨다. 서로 명함을 주고 받으며 따져 보니, 본관까지 같아서 한참 화기애애하게 웃고

대화를 나누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국전 초대작가시라고 한다. 전시회를 하면 꼭 초대장

을 보내준다고 하셨다.

작년 회장을 하신 분은 작년에 정년퇴임을 하셨는데, 참 열심히 사시고 재주가 너무 많으신

분이시다. 다른 사람들 바쁘다고 교지 편집도 웬만한 것은 혼자서 다 하시고 대단하시다. 원

래 사진도 잘 찍으시고 악기 연주도 잘 하셨다고 한다. 공원에서 기타연주를 하시는 분이 계

셔서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분이셨다는 다른 선배님의 말씀을 들으니 무척 존경스러워졌다.

퇴임을 앞두고 단소도 배우고, 대금까지 배우셨고 지금도 열심히 연습을 한다고 하신다. 동

사무소에서 하는 서당도 열고, 여기저기서 당신이 가지신 노하우를 봉사하면서 바쁘게 사시

고 계시니 무척 자랑스럽다.

또 한 분 사무국장을 하신 분은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신데, 이번에 사회를 보시는데 어찌나

말씀을 잘 하시는지, 그 자연스러운 언변에 다들 탄복을 했다. 나는 밖에서 일 보느라 1부행

사는 잘 듣지는 못했지만, 간간히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마음이 어찌나 끌리던지...또 한 분은

우아하신 여자 선배님, 참 미인이시고 동문회를 실제적으로 늘 돕고 계시는 분으로 본받고 싶

은 분이시다. 또 한 분은 나와 근처에서 근무를 해서 안면이 제일 많은 분이신데, 총무를 맡아

서 작년 임기 동안 가장 깔끔하게 장부정리를 잘 해주셨다는 회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선배님

들에게서 참으로 본받을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더욱 건강하시고, 다음에 더욱 좋은

얼굴로 뵈었으면 좋겠다.

동기들이 다들 연수중이라 많이들 못 왔지만, 몇몇과 담소를 나누며 정을 다졌고, 작년 회

장님은 너무 수고했다면서 다시 찻집에서 작년 운영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두 선배님들이라 정식 모임에서는 얘기할 시간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12시가

다 되어 돌아왔지만, 흐뭇하고 나름대로 뜻깊은 시간이었다. 연세가 칠순을 넘긴 분들도 계

셨고, 팔순을 넘기신 분들도 정정하게 오신 모습은 참 보기 좋았다. 건강하게 내년에도 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프로방스의 일몰>

막 해가 넘어가려고 하는 걸, 억지로 잠시 잡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임진강 건너 저 산 너머에서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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