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복원하다
주경림
속살이 버드나무빛으로 막 물오르기 시작한
페르시아 여인, 코발트빛 짙은 입술에는
멀리 아리비아해의 물결이 넘실거린다
파도 한 줄기가 청색 유리실 목걸이를 남겼다
허리 아래 풍성한 치마 밑으로 드러난 발목이 애처롭다
그녀가 새처럼 오므린 입술을 열어 코발트빛 바다를 쏟아낸다
어느 누구도 그 사랑을 거두는 이 없어 긴 세월 묻혀 있어
아득히 잊혀졌다가...
황남대총 출토 국보 193호 봉수형鳳首刑 유리병,
발등까지 깨진 아픔을 딛고
깨어진 조각들을 용케 끼워맞춰 서 있다
이제, 조각조각의 상처는 아픔을 넘어
그물무늬 장식으로 그녀의 생애를 온전히 받쳐준다
우리 사이 깨진 사랑, 묻혀버린 사랑도
저렇게 아리따운 모습으로 복원될 수 있을까
금실을 감아 수리한 손잡이를 들자
오래오래 발효된 사랑은 묵은 술처럼
독하다, 향기롭다
-문학과창작 2006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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