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흘림 등잔
손옥자
한때는 빛이었을 배흘림 모양의 등잔
오늘은 알뜰시장 한 귀퉁이에 헐값으로
몸을 내어 놓았다
그 옛날 다 태우지 못한 불이 아직 몸속에 끓고 있는데
지나가는 누구라도 좋다
몸의 유연한 선과 그윽한 백자빛에 혹한 자
아니면 남은 정열을 읽어내는 사람이라면
값이 문제랴
등잔은 목을 길게 뽑고 사람을 부른다
따가운 시선이 몸을 핥고 지나간다
손거울 머리핀 짝없는 찻잔까지 다 팔리고 덜렁
혼자남았다
-심지는 필요없어 불 켤 일 없으니까-
누가 목줄기를 잡아 뜯는다
어둠속에 버려진 자존심이 불을 켜고 잃어선다
파란 불곷이 바늘끝처럼 날카롭다
등잔은 원추모양의 뚜껑을 어둠속으로 쑤욱 밀어올린다
모가지
꼿꼿하게 세우고
시집 <배흘림 등잔> 2004년 문학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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