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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마량항 분홍풍선/김영남

마량항 분홍 풍선

김영남


골목이 시작되고, 골목 옆구리

파도 출렁대는 곳에 환한 창이 있다.

그 창에선 초저녁부터 김칫국 냄새가 번지고

가끔 웃음소리도 들리곤 한다. 그런데 빠져나온

웃음소리 하나가 창을 부풀게 한다.

자꾸만 부푸는 게 마치 커다란 분홍 풍선이다.

쪼그리고 앉아 그 풍선 잡고 있으니 내가 질질 끌려간다.

에구머니나, 분홍 풍선이란

잠자던 것들까지 깨워 띄우는 신기한 기구,

허름한 유리창에선 더욱 높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

찬 바람 불면 더욱 슬프게 펄럭이는 어선의 깃발

난 그 풍선을 잡고 먼 나라로 가고 싶다.

항구란 배만 타는 곳이 아니라 그런 풍선을 잡고

더 따뜻하고 아늑한 나라로 출발하는 것임을,

풍선에 바람이 빠져버리면

예서부터 흔들리는 귀환이 시작되는 곳임을

배운다, 마량항 부둣가에 고동처럼 붙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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