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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내 마음의 연약지반구역 /문세정

내 마음의 연약지반구역

문세정


서해포구 월곶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처럼 내 마음에도 무르고 약한 땅이 있습니다 심장을 중심으로 반경 5cm지점은 언제나 진흙입자들로 덮여있어 무게를 버티는 힘이 매우 약하답니다 가끔 생각지도 못한 슬픔이 그 지점을 통과할 때엔 강도 3.0이상의 지진이 일어 정신을 잃을 만큼 전신이 흔들리기도 하고요, 한번 내려앉은 지반을 복구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답니다 네, 그럼요 한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죠 자칫하면 당신이나 나나 대책 없이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니 당신, 나를 통과하려거든 먼저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마음속도계를 조절해가며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해요 물이 흐르는 대로 순순히 몸을 내맡기는 나뭇잎처럼 당신과 나의 숨결이 맞닿아야 해요 그 순간만큼은 지나간다는 생각조차 내려놓은 채 한 호흡으로 지나가야 하는 내 마음의 습지, 그대가 무심히 던진 말 한마디에도 쉽게 무너져 내리는

- 문세정 첫시집, <예수를 리메이크하다>, 문학세계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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