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은 모든 것을 병들게 하고
황경순
홍콩야자는
온몸이 누렇게 떠버렸다.
처음엔 빤질빤질 윤이 나
잘 자라는 줄만 알았는데
뒷면에 숨어서 하루하루 세력을 불린
교활한 진딧물에게 완전히 잠식당했다.
뒤늦게 살충제도 뿌려보고
구역질을 참아가며 손톱으로 박박 긁어도 보았지만
시들시들 이젠 가망이 없다
나 바쁜 걸 어찌 그리 용케도 알았는지
홍콩야자는 생존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손가락을 펼치고 늘 무언가를 떠받들고 있는 홍콩야자는
그 넉넉함과 빤질거림으로 인해
호시탐탐 진딧물의 공격 대상이 되곤 했다.
같은 장소 수많은 화분 중에
유독 그것만 상했으니 다행이랄 수가 없다
공격 대상은 늘 정해져 있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산다.
십년지기를 잃어버린 아린 가슴을 진정시키고
화분을 비운다.
내 키만한 홍콩야자를 대형쓰레기 봉투에 담는다.
담는 손이 무겁다
죽은 나무를 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억지로 비좁은 규격봉투 속에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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