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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빛의 무게『시산맥詩山脈』2013 봄호

빛의 무게

 

 

황경순

 

 

불빛이 떠난 자리.

바닥에 먼지 되어 뒹구는 하루살이들,

그들은 먼지가 되어 그렇게 떠나갔다.

팔랑이던 날개와 다리의 흔적도 없이

온몸이 가볍다.

 

입이 퇴화되어 먹지도 못한다는데

떼를 지어 그토록 치열하게 불빛을 향해

빙빙 돈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주광성走光性*의 생리현상 때문일까?

본의 아니게 사람들을 괴롭히다

먼지가 되어 순식간에 곤두박질친

그들의 삶의 목표가 궁금하다

내 삶의 목표처럼

 

하루살이에게나 사람에게나

빛의 경계는 그토록 뚜렷한 것인가

오직 불빛만을 향해서 달려온 그들은

불빛을 제공하고 또 순식간에 꺼버린

나를 원망할까? 감사해 할까?

의문만 남기고

그들은 바람이 되어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영겁永劫을 향하여

사뿐히

사뿐히

 

불빛이 떠난 자리,

어둠이 가득해도

빛이 너무 버겁다

 

다시 불을 켤 수가 없다

 

 

 

*주광성走光性 : 광주성光走性, 추광성趨光性이라고도 한다. 빛으로 향하는 성질을 양의 주광성, 거역하는 성질을 음의 주광성이라고 한다.

 

-시산맥詩山脈2013 봄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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