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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시와 등단시

2013 신춘문예 당선 시 모음 (조선/동아/한국/경향/매일/세계/한경/부산) 손톱 깎는 날 김재현 우주는 뒷덜미만이 환하다, 기상청은 흐림 구름 사이로 드문드문 쏟아지는 빛 속에는 태양이 아닌, 몇 억 광년쯤 떨어진 곳의 소식도 있을 것이다 입가에 묻은 크림 자국처럼 구름은 흩어져 있다 기상청은 거짓, 오늘 나는 천 원짜리 손톱깎이 하나를 살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내 손톱은 단단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나의 바깥이었다 어릴 적부터 손톱에 관해선 그것을 잘라내는 법만을 배웠다 화초를 몸처럼 기르는 어머니를 보고 자랐지만 나는 손톱에 물을 주거나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일 따위에 대해선 상상할 수 없었다 결국 그것은 문제아거나 모범생이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과 같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만 모범이었으며 문제였을 뿐.. 더보기
2010신춘문예 당선작 시와시조 2 12편 14.2010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속옷 속의 카잔차키스이길상잘 갠 속옷 속에는 영혼의 세숫물이 썩어간다 눈을 씻어내도 거리의 습한 인연들 내 안을 기웃거린다 내 폐허를 메울 사막은 그때 태어난다 반성하듯 내복을 차곡차곡 갤 때 올마다 낙타 한 마리 빠져나간다 밤, 속옷을 갤 때마다 개어지지 않는 내가 보인다 불운 견디게 하는 사막 풍경은 상향등처럼 켜지고 내 안의 나를 알고 있는 생이 뭔가 흘리면서도 아파할 것이다 서른 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감히 물을 수 없을 때 부르튼 입술은 길을 알고 있었다 맹인 바구니의 노래가 퇴근하지 못한 마음에 파고들수록 노래 속 세상을 그쯤으로 짚으며 난 힘겹다 감이 잡힐 나이, 노래의 무거움은 몸 밖에서 온다 우산 안에서도 젖는 내일의 삶, 울음 삼킨 시늉할까 그래 .. 더보기
2010 신춘문예 당선작 시와 시조 13 1.2010 경향 신춘문예 시직선의 방식 이만섭 직선은 천성이 분명하다 바르고 기껍고직선일수록 자신만만한 표정이다이는 곧 정직한 내력을 지녔다 하겠는데현악기의 줄처럼 그 힘을 팽창시켜 울리는 소리도직선을 이루는 한 형식이다나태하거나 느슨한 법 없이 망설이지 않고 배회하지 않으며좋으면 좋다고 싫으면 싫다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단순한 정직이다밤하늘에 달이 차오를 때지평선이 반듯하게 선을 긋고 열리는 일이나 별빛이 어둠 속을 뻗쳐와여과 없이 눈빛과 마주치는 것도직선의 또 다른 모습이다가령, 빨랫줄에 바지랑대를 세우는 일은 직선의 힘을 얻어허공을 가르며 쏘아대는 직사광선을 놓치지 않으려는 뜻이 담겨있다그로 인하여 빨래는마음 놓고 햇볕에 말릴 수 있을 것이다바지랑대는 빨랫줄로 말미암고빨랫줄은 바지랑대 때문에 더.. 더보기
2009신춘문예시당선작25편모음 2009신춘문예시당선작25편모음 1)조선일보 2)동아일보 3)대전일보 4)매일신문 5)부산일보 6)전북일보 7)국제신문 8)경남일보 9)서울신문 10)한국일보 11)문화일보 12)경인 일보 13)영남일보 14)광주일보 15)강원일보 16)불교신문 17경향신문 18)경남신문 19)경상일보 20)한라일보 21)무등일보 22)전남일보 23)농민신문24)동양일보 25)뉴스제주영주 ------ 1.[2009 조선일보 신춘문예] 오늘은 달이 다 닳고 민구 나무 그늘에도 뼈가 있다 그늘에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나있다 바람만 불어도 쉽게 벌어지는 구멍을 피해 앉아본다 수족이 시린 저 앞산 느티나무의 머리를 감기는 건 오랫동안 곤줄박이의 몫이었다곤줄박이는 나무의 가는 모근을 모아서 집을 짓는다 눈이 선한 저 새들에게.. 더보기
2008 한국시문학상 수상작/휘발성 외/이상호 2008 한국시문학상 수상작휘발성 외 이상호1중국 여행길에 즁국명주라는 술 한 병을 사왔다. 혼자 마시기 아까워 아끼고 아끼다가 어느 날 드디어 개봉하려는데 술병이 너무 가볍다. 귀에 가까이 대고 살살 흔들어보자 거의빈 병이라는 느낌. 이리저리 병을 돌려가며 자세히 살펴보니보일 듯 말 듯 실금이 갔다. 남은 술을 따르니 겨우 작은 잔하나도 다 못 채운다. 그동안 실금 사이로 살금살금 알코올이달아났던 것이다.2자궁을 빠져나오느라 내 몸에도 실금이 생겼는지실금 사이로 조금씩 증발하는 알코올처럼슬금슬금 빠져나가는목숨휘발성이 너무 강해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미리 따라볼 수도 없고 얼마나 남았는지알 수가 없어 더 궁금한 -'시인세계' 2008 여름호-마른장마장마라는데 비는 오지 않고햇볕이 소나기처럼 쏟아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