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북한산
20여일 만에 다시 북한산을 찾았다. 아침 8시, 눈을 뜨니 비가 오지 않았다. 토요일 저녁, 지하철역 출구를 빠져나오자, 비가 엄청 쏟아졌다. 저녁을 많이 먹어 잠시라도 걸을 요량으로, 우산을 샀다. 와, 그런데 비가 문제가 아니라 돌풍이 불어 10분 정도 걷는데 우산이 세 번이나 뒤집어졌다.5000원짜리 삼단우산이 약하기도 했겠지만, 우산을 쓰나마나 옷이 다 젖었다. 그래서, 일요일에도 비가 온다기에 산행을 가야할 지 말아야할 지 결정을 못 내리고,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잠이들었는데, 아침에 비가 오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부지런히 아침 준비를 해서 식구들과 먹고, 설겆이는 할 시간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부탁을 했다.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물을 끓여서 보온병에 담고 이것저것 물건을 챙겼다. 9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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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는?
사무실에서 방향을 바꾸는 작업을 했다.앞뒤를 바꾸는 작업인데, 일종의 숙원사업이기도 했지만, 확 뒤집고 보니 손이 여간 가는 게 아니었다.구석구석 쌓인 먼지와 찌든 때를 닦아내고, 인부를 동원해서 선을 정비하고, 가구를 옮기고, 이틀에 걸린 일을 마무리하고 보니, 기분이 상쾌하다.새로운 방향에서 보는 꽃밭, 그리고, 새로운 바람.동양란의 하늘거림마저 여유로워보이는 날,작은 것에서 이렇게 여유가 생기는 것을....책상의 위치가 바뀌니 상사의 얼굴이 코앞에 와 있어서 좀 민망스럽긴 했다.그런데, 볼펜 건네주기가 무척 편안해지고...옮기면서 주인을 잃은 체침기, 불필요하다고 수확한 스테플러 하나까지...온몸이 쑤셔오는 육체적인 피로도 잊은 채행복도, 불행도작은 변화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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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바위를 보면서
세번 째 산행은 어제 다녀왔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모르는데, 원래 두번째 주가 쉬는 토요일인데, 출근을 하라더니, 안해도 된단다. 갑자기 시간이 생겼으니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일은 그대로 쌓여 있으니, 그냥 나가서 일을 하려고 했는데, 일요일날 하기로 하고, 산행에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 전날 모임이 있어서 늦게 귀가해서 컨디션이 어떨지 몰라서 갈까말까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7시. 가도 될 것 같았다. 일 주일에 두 번 산행을?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래도 그냥 집에 있으면 요즘 뒤숭숭한 마음에 일도 잡힐 것 같지 않아서,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아침준비를 했다. 콩나물국도 끓이고...그래놓고 정작 나는 먹을 시간이 없었다. 부랴부랴 배낭을 챙겨서 나섰다. 벌써 9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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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파블로 네루다
시 (詩)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말야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그건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으며, 내 영혼 속에서 뭔가 시작되어 있었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또는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넌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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