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상

눈과 얼음, 多重自我

눈 다운 눈이 오늘에야 내렸다.

첫눈은 늘 모든 첫느낌처럼 오는 둣 마는 듯 하는 것인가?

첫눈이 언제라고 가늠하기 어렵더라는....

첫느낌은 늘 생경스럽고, 어색하지 않은가?

올해 첫눈이 아님은 분명한데, 올해 들어 가장 눈 답게 내렸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쉬는 날 내리는 눈이라, 창밖을 보며 마냥 감상에 젖을 수 있어 더욱 좋다.

펑펑 내리는 눈, 눈이 내리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모든 걸 다 덮어버리니까.

그 차가운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않고, 하얀 솜처럼 포근하다는 생각만 드니...

눈은 아이들의 함성을 지르게 만든다.

놀이터에는 아이들로 북적대고, 어른들은 우산을 쓰고 그것을 지켜본다.

엉금엉금 기듯이 걸어가는 사람들, 목적지가 먼 사람들에게는 난감한 눈길,

바라보는 내게는 모든 것이 풍요롭게만 보인다.

아마 나뭇가지나, 솔잎에게 물어보면 다른 느낌을 말할 지도 모른다.

이 착시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지......!!

솔잎에, 동백잎에무거운 짐이 될 지도 모를 눈꽃이 인간의 눈에는 낭만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 눈 속에 파 묻힌 솔잎의 눈에는 나의 눈이 어떻게 보일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눈이 내리면, 마음이 여유로워지는 것일까?

3일 연휴, 그 동안 지친 탓인지 크리스마스날 농장에 다녀온 일 외엔 그저 두문불출이다.

농장은 모처럼 찾았더니, 난리가 났다.

식수를 담아 놓은 물통 하나가 탱탱 얼어서 터져버린 것이다. 밑동이 아예 빠져 버리고

방바닥으로 엄청나게 흘렀나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바닥에 물은 그저 두어줄기 얼어

있을 뿐이었다. 알고 보니, 그 물을 남편이 출장 갔을 때 다녀오면서 방 한 가운데 던져

놓은 오리털 잠바가 다 먹은 것이었다. 방 한 가운데, 파란 잠바다 물 먹은 몸통을 탱탱

얼리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방바닥이 약간 기울었는지, 한 쪽 구석에 쇼핑백 속에 허드

레 옷가지를 담아놓은 것도 마지막으로 그 물들을 다 흡수하고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전기를 넣으니, 물기가 말라가고 살얼음이 끼었던 곳이 서서히 녹

고 바닥이 뜨끈뜨끈해질 때까지도 방 한 귀퉁이엔 얼음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인생도

이러하겠지? 한 곳이 아무리 뜨거워져도 한 귀퉁이는 썩어갈 수 있다는 거, 아무리 물길

이 세차게 흘러도 무언가 방패막이가 있다는 거.....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살만하다고 하지 않을까?

절망 속에서도 꽃이 피고, 너무 기뻐서 흥분하다 오히려 죽는 사람도 생기고...

한계령에 쌓인 눈을 보고 가슴이 멈출 정도로 감격한 때가 있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거기 다시 그 날처럼 가 보아야지 하면서도 아직 한 번도 때를 맞추지 못했다. 눈이 내리

면 발이 묶이는 것을 먼저 걱정하고 마는 우리가 아닌가? 오늘도, 내일 당장 아침 출근이

사실은 무척 걱정스럽다. 몇 시에 출근을 해야 지각을 하지 않을까?

세상을 덮어 버리는 그 속성으로 차가 가야할 길까지 다 덮어버리는 눈, 따뜻한 담요가 아

니라는 사실은 그걸로도 증명이 되지만, 얼어서 미끄러질 내일에 대한 우려 보다 눈이 내려

기쁜 것이 우리 인간들이다. 내일이면 눈은 더이상 깨끗한 이미지를 벗기도 할 것이다. 염

화칼슘과 범벅이 된 눈은 더 이상 백설이 아니니까.....

얼음 또한 마찬가지다.

어제 뉴스에서 본 빙벽은 정말 장관이었다. 북한산 숨은 벽의 고드름으로 이루어진 바위들,

계곡에서 줄기차게 내리꽂히던 폭포가 이룬 그 얼음의 투명함만이 얼음일 수는 없다. 더러

운 하수구가 얼어붙어도 얼음이요, 취객이 쏟아놓은 토사물이 얼어붙은 것도 얼음이니까...

눈이 오니까, 횡설수설 한다. 내가 오늘 다중자아가 다 표출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