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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안개 속으로

안개 낀 날, 특히 요즘 같은 가을에서 겨울의 넘어가는 날, 안개 속으로 낙엽들이

휘날리면 가끔 정신이 혼미해진다. 이런 날은 직업을 잘못 선택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픈 날.

오늘 아침, 고속도로를 벗어나자 산과 들판, 그리고 갯골 사이의 길을 달리려니

안개가 자욱했다. 안개등을 켜고 속도를 줄였지만 마음이 안정되지는 않았다.

뽀얀 안개 속으로 살아나는 마른 풀들, 그들은 새로운 창조물 같다. 마른 풀에도

생기가 돋고 찬 서리가 내린 풀잎은 하얀 서리꽃이 피어 새로운 세상을 연출한다.

끝없는 갯골의 갈대숲인지 잡풀 숲인지는 모르나, 일정한 방향으로 흔들리는 그들의

얼굴은 꿈을 꾸고 있다. 몽롱한 상태에서 오르가즘에 달한 청춘 남녀의 신음소리가 들려

오는 듯도 하고,몽유병에 걸린 소녀가 들판을 마구 쏘다니며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는듯

도 하다.포구가 가까워지자 안개는 더욱 짙어지고 차들은 무심히 달린다. 나와 같은 생

각을 하는 사람은 없는 걸까? 클랙션을 빵빵거리는 차도 있고, 사거리를 지키는 교통경찰

은 손짓이 바쁘다.

아무리 사람들이 바쁜 아침이지만, 나는 직장으로 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내처 달리면 바다인데, 바다에도 해무가 끼었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 신호를 잠

시 놓치기도 했다. 빵빵거리는 뒷차....옆 차선에선 서너 대가 앞서 가고 있으니, 그래도

한참을 기다려준 후 누른 것일까?

석모도의 해무가 떠오른다.

아, 정말 그런 안개는 난생처음이었다.

정말 옆에 서 있는 사람이 희미할 정도로...

석모도에 두 번째로 갔으나 그 유명한 절은 가질 못해서 안개에 빠져 한가한 곳으로 빠지

다 보니, 그 방향은 또 놓쳤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인 줄 알았더니, 어느 한 순간 길은

바다로 빠지고 있었다. 바다로 빠진 길이라니....어느 시인은 길은 모두 이어져 있다고 했

는데, 길은 이어져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끝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을.....

그러나, 길이 없어도 사람들은 새로운길을 낸다.

물길을 내고, 바닷속에도 길을 내는 사람들. 하늘에도 길을 내고.....

안개 속으로 길을 낸다면 어떨까?

아니. 이미 안개 속에도 길은 나 있을 것이다. 새들은 안개가 끼어도 잘도 날아가니까...

안개 속에도 길이 있는 거라고 봐야겠지?

안개 낀 날은 조금은 싸이코가 되는 것 같다.

가끔은 그저 일상을 모두 팽개치고 싶은.....

그래도 현실의 발을 떼지 못하고, 나는 이 자리에 앉아 있다. 퇴근 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까

지도....마음은 안개 속으로 무언가를 숨기기도 하고, 미루어 놓았던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쉬 결근도 하지 못하는....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싶지만, 안개 속을 숨가쁘게 빠져나온 나,

이제는 저녁 어둠 속으로 다시 모험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