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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중심은 사랑이다 외 3편/박남주

중심은 사랑이다

박남주

배를 타 보았다 무심히 뱃바닥을 들여다 보았다

패어진 홈에 널빤지들이

사개를 박고 단단히 맞물려 있다

서로의 몸 속 깊숙이 제 몸을 밀어 넣고 있다

물 한 방울 바람 한 줄기 햇빛 한 오라기 새어들

틈 없이

몸을 맞대로 상대방 몸의 무게를 떠받치고 있다

뱃속에 모아둔 정기, 젖 먹던 힘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온몸을 내리누르는 하중은 주제할 수 없는 사랑의 무게로

가뿐하게

본시 제자리였기에

처음부터 한 몸이었기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기

한눈을 팔거나 중심을 잃지 않기

중심은 사랑이었다

문경 관음리 조선요




맹렬히 타오르는 불꽃

그 속은 맑고 깊고 고요하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흙, 물, 바람과 뒤엉키는

그 어울림의 흔적을 내보이지 않는다

고요히 흙 속으로 스며들어

제 빛깔과 숨소리를 불어넣는다


문득 가마의 둥근 돔 안에서

울음 터뜨리는

속 살결 투명한

사내아이.


썩어 향기로운




가을 숲속에 들어서니 향긋한 흙냄새가 코를 찌른다

스트렙토마이스 그리세우스 토양 세균이

낙엽을 썩히고 유기물을 분해하는 냄새란다

지난 여름날의 지독한 사랑의 열병이며

삶의 고통이 썩어 문드러져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냄새란다


썩는 냄새가 향기롭다니

치열한 고통의 흔적이 향기로울 수 있다니


밤새 죽어라 몸을 굴려 지친 몸에

새벽이슬이 맺혀 있는데

사방으로 제 몸 향기 퍼뜨리는 입술에

아침 햇살이 반짝이는데.




자연법




갯지렁이는 끊임없이 새 집을 짓는다

몸의 마디마디에 온힘을 끌어모으고

죽을 힘을 다해 집을 짓는다

집짓기를 계속한다

밀물에 쓸려나가 흔적없이 사라지는 제 집이며

아무런 미련없이 무너지는

달콤한 추억의 향기며 부드러운 모래의 속삭임이며


갯지렁이가 지나간 자리마다 구멍이 숭숭 뚫린다

숭숭 뚫린 그 구멍마다 살그머니 들어와 다리 뻗

갈 길 잃은 매화조개며 나비고기


그 아름다운 보시.



-시집 ‘중심은 사랑이다’ 중에서-

시인 박남주

서울출생

진명여고 졸업

상명여대 국어교육과 졸업

동국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1998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단오부채’(2001 해외동포추천도서)

‘중심은 사랑이다’

‘시아카데미’, ‘시랑’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