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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상큼한 봄을 먹다

지난 일욜엔 파주로 나물 뜯으러 갔다.

남편 선배님의 주말농장 근처로.....

우리 집에서 파주쪽은 자유로를 타고 가면 밀리지 않고 갈 수 있어서 교통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마음이 답답할 때면 가끔 드라이브를 하는 길이지만, 요즘은 그나마도 뜸해서 새로운 느낌까지 들었다.

넓은 도로라 운치는 덜했지만, 산구비를 돌 때 마다 새롭게 나타나는 꽃들이 그 단조로움을 달래주었다. 복숭아

꽃이 분홍빛으로 환하게 웃어주고, 진분홍 박태기나무, 하얀 조팝나무들이 곳곳에서 숨어 있다가 환한 얼굴을

내밀었다.



산비탈의 밭에는 나즈막한 복숭아나무에 분홍빛 복사꽃이 눈을 즐겁게 해주고, 아, 또 다른 밭에는 새하얀 배꽃

이 눈부시게 피어나고 있었다. 배꽃을 보면 정말 눈부시고, 청초하기까지 하다. 아담한 시골집 담장에는 온갖꽃

들이 만발해 있다. 작은 화단에 피어난 꽃들, 그리고 담장에 기댄 배꽃, 복숭아꽃, 살구나무도 한 그루 보였다.

어느 좁은 길을 지날 때는 구리구리한 냄새가 식물들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군부대 담장에도 새하얀 옷을 입은 배나무 한 그루가 얼룩무늬와 철조망을 부드럽게 녹여주고 있었다. 그 파주

에도 인삼밭이 많아져, 까만 차양을 두른 가리개들이 곳곳에 보였다.



임진강 근처에 있는 파주땅, 그 분의 주말농장은 그야말로 말만 주말농장이다.

몇 년 전에는 한 쪽에다 간단한 야채인 고추, 가지, 상추 등 몇 가지는 심었었는데, 올해는 그나마도 아무 것도

안 심으시겠단다. 1000여평을 그 시골 동네 사람에게 세를 주어 오이농사만 짓게 하는 것....

이 분들은 땅 한 쪽에사 예쁘게 생긴 조립식 콘테이너 한 개 갖다 놓고, 주말이면 가끔 바람 쐬러 가시는 용도...

벌써 그 곳에 땅을 산 지 오래 되어 그 동네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60이 된 아저씨와 56세의 아주머니는 금슬이 아주 좋다. 애들도 다 키우고 두 분이 주말에 그 곳에 가는 것이

무척 재미있단다. 근처 산과 들에서 나물 뜯고, 시골 분들과 이야기 나누기도 하고, 야채들이며 과일들을 함

께 먹기도 하면서....

우리 부부도 덕분에 그 동네에 몇 번 가서, 주변의 분들도 몇 분 사귀기도 했다. 그 선배님이 울 남편을 무척

좋아해서, 거기서 나는 나물들은 우리에게 자주 나눠주기도 하신다. 또 우리는 그 동네에서 나는 야채나 과일.

쌀을 사서 나눠 먹기도 한다.

거기는 북쪽이라 아직 나물이 많이 돋지 않았다.

그래도, 주변 밭에서 가꾸는 가시오가피순도 뜯고, 산으로 올라가 취나물과 원추리잎, 둥굴래뿌리며, 고들빼기

도 캐는 든 두어 시간을 나물을 뜯었다. 취나물은 아직 너무 어렸고, 쑥은 너무 많이 자랐지만, 연한 것으로 좀

뜯어 왔다. 냉이는 이제 꽃이 다 피어서 캘 수도 없고....두릅나무를 키우는 노부부께서 선배님부부를 또 아주 좋

아해서 두릅을 많이 따 주셨다. 그 절반은 역시 우리가 챙겨 오고....

오전에 산 한 바퀴 돌 때 꽤 많이 뜯었는데,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해서 내려왔다. 근처의 매운탕집으로

가서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민물매운탕을 먹었다. 어찌나 맛이 좋은지....민물매운탕 맛도 좋았지만, 역시

뚝뚝 떠넣은 수제비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가볍게 술 한 잔씩을 하고 돌아오니, 따뜻한 방바닥이 어찌나 좋은지

으슬으슬하던 몸이 녹으면서 졸음이 살살 왔다. 그 부부와 남편은 수도를 손본다고 나가고 나는 오수에 빠져들었

다. 동네아저씨들 몇 분이 와서 시끄러웠기에 소리는 쟁쟁하게 들렸지만, 그래도 달게 잠을 잤다.

















오후에는 아주머니랑 이야기를 나누면서 따뜻한 방에 있으니 몸이 좀 풀렸다. 요즘 바빠서 몸이 피곤했던 터라

일요일의 외출이 힘들었나 본데, 공기가 좋아서인지 몸이 개운해졌다. 오후에는 네 명이 또 산으로 올라갔다.

역시 나물을 좀 뜯었지만, 야생두릅도 아직 안 돋아나고, 만족하지는 못했다. 산의 양지바른 곳에서는 각시붓꽃

이 청초하게 피어 무리를 이루고 있었고, 작은 들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이웃

집 앞의 보리수 나무에는 작년 이맘때도 꽃이 피었더니, 아이보리색 등 모양의 꽃들이 조롱조롱 매달렸다. 우아

한 빛까지 내는 보리수는 참품위가 있어 보이는 나무이다. 그래서 부처님이 그 나무 밑에서 득도를 하셨을까? 이

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냥 산을 오르는 것도 힘들지만, 나물 캐면서 오르는 것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지, 돌아오는 길에는 다리가

뻐근하기도 했지만, 모처럼 맑은 공기 마시면서 운동을 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튿날, 상큼한 쑥국, 쌉싸름한 산나물을 무쳐 먹으니, 양은 적어도 내가 직접 따 낸 반찬들이라 더욱 맛있고

향긋한 식탁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나물을 먹은 것이 아니라, 바로 봄을 먹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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