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바쁘기도 하고 몸 상태도 영 안 좋아서 집안 꼴이 엉망이라
씽크대 정리를 조금 하다가 빈 그릇들을 많이 보았다.
냉장고에 있는 그릇들 말고, 씽크대에 있는 그릇들은 늘 빈 그릇들인 상태가 대부분이다.
예쁜 그릇이라는 이유로, 비싸고 귀하다는 이유로,
그냥 고이 모셔져 있는 그릇들도 허다하다.
그릇의 사명은 담기기 위해서인데
마음이 동하여 비싼 값을 지불하고도 한 번도 안 쓴 그릇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않아도,
바쁘답시고, 잘 열지 않는 곳은 거의 방치상태인데도
그들은 불만이라고는 없는 듯이 보인다.
아니다.
그 불만이 내 눈에는 안 보일 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그릇 모셔두자는 부류는 아니다.
유행 지나면 싫증이 날 지도 모르기 때문에 예쁜 그릇부터 쓰자고 자꾸 말하기도 한다.
그릇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었다.
집에서 주로 계시는 우리 시어머니와의 신경전,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치열했다.
울시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이라고 보면 별로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오로지 자식들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해주려고 하신다. 아울러 적당히 대접을 받기도 바라심은 당연
한 일.
또 유난히 깔끔하신 시어머니는 취미가 쓸고 닦으시는 것, 그 만큼 깔끔하시고 집안 청소며, 빨래는
아주 대단할 정도로 깔끔하게 하시는 분이다. 거기에 비하면 음식 솜씨는 별로 없으신 편이라, 음식
담당은 거의 나였다. 내가 마음 먹고 요리를 하면, 나는 구석구석 예쁜 접시를 꺼내서 담곤 하는 것
이 너무 즐겁다. 그 기쁨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요리를 하는 것은 주로 아침, 저녁이고, 낮에 주
로 집에 계시는 어머니는, 내가 꺼내 놓은 그릇을 어김없이 제자리로 옮겨 놓으신다. 그 전날 그릇
꺼내면서 유행 지나면 보기 싫어진다고 이젠 꺼내놓고 쓰자고 말씀드렸음에도 말이다.
저녁 준비를 할 때 그걸 발견하곤 은근히 속이 상하곤 했다.
오기로 또 저녁 반찬을 그 그릇에 담아 낸 적도 있었다.
그러면 그 다음 날은 또 제자리로 옮겨져 있고...
하루는 사촌 시누이가 와서 너무 예쁜 커피잔이라고 하면서 내가 아끼던 커피잔을 꺼내서 마시다가
덜컥깨뜨리고 말았다. 울 시어머니 덕분에 내가 두 번 밖에 써보지 못한 커피잔이었다. 게다가 그 커
피잔은 결혼할 때 절친한 친구가 선물한 것이라 내가 얼마나 애지중지하던 것인지!!
아깝다는 내색도 못하고, 그렇게 짝 잃은 커피잔을 쳐다보기도 싫어 구석에다 모셔놓았다.
또 하루는, 또 그 사촌시누이가 와서 예쁜 접시라고 탐을 내면서 음식을 담아 먹다가 또 깨뜨리고 말
았다. 그것은 정말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접시였다. 정말 속이 상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결혼 생활 21년 중에서 몇 년 전 분가해서 산 4년을 빼면 17년을 거의 함께 살아온 터라 미주
알고주알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다. 시어머니는 여전히 새것은 아끼고 헌 것만을 고집하실 때가
많다. 그러면 나는 몰래 헌 것을 버리기도 한다. 하다못해 구멍이 숭숭 뚫린 행주마저 버리기를 아까
워하는 시어머니시다. 하도 안 버려서 나는 일부러 더러운 곳을 잔뜩 닦아서 쓰레기봉투에 버리면,
그것을 다시 주워서 삶아서 내놓으신다. 어머님 세대의 절약정신을 누가 말리랴? 그릇도 마찬가지
다 이가 빠진 머그잔도 함부로 못 버리게하신다.
요즘은 시어머니께서 연세가 드시니 쓸고 닦고 하시고 싶어도 잘 못하신다.
마음은 그런데 잘 되지 않으시니, 마음이 쓸쓸하신 때가 많은 듯 하다.
요즘은 아예 포기를 하셔서 새 그릇을 내 놓아도 다시 올려 놓으시지는 않는다.
그 만큼 근력이 떨어지신 탓일 게다.
요즘은 바빠서 요리할 시간도 잘 없고, 그저 적당히 해서 먹을 때가 많다. 다 큰 아이들이지만, 아직
도 엄마 보고 요리를 안해준다고 투정을 부리기도 하지만, 내가 바쁜 탓에 더 이상 보채지는 못한다.
울 시어머니께서도 20년 동안 놓으셨던 요리솜씨를 요즘 가끔 발휘하신다. 내가 늦게 퇴근하는 날이
많으니, 바쁜 며느리를 대신해서 국도 끓여드시고....나는 요리 솜씨가 느셨다고 부추겨드리기도 한
다. 냉장고에 음식 재료가 썩어도 반찬 만들지를 않으시던 분이 하시려니 힘이 드실 테지만, 사람 좀
쓰자고 하면 질색을 하시니 어쩌랴?
워낙 움직이는 걸 싫어하시고 당뇨로 조금만 힘들어도 일을 잘 못하셔서, 시아버님을 비서로 삼아
모든 일을 추진하시지만, 두 분이 함께 계시니 그만큼 건강도 웬만하시리라 여기고, 적당한 일도 필
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이 산만해졌지만,
그릇을 쳐다보면서 오랜만에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보았다.
빈 그릇이 자기 몸 속에 무언가 가득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도, 우리 시부모님도, 그리고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보람으로가득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스위스라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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