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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시내

경복궁을 다시 돌아보다

서울시내 문학기행 세번째 장소는 바로 경복궁이다.

물론 호주에서 온 조카를 위해서 궁궐을 보여주자는 큰 계획 아래, 창덕궁과 경복궁 중에서

어느 곳을 갈까 하다가 발을 삔 내가 덜 걸어야할 것 같아서 정해진 곳이다. 그리고 겨울 경

복궁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은 모두의 마음이 함께 했다.

광화문은 수리 중에 있었다.

포장을 두르고, 정위치를 잡기 위해 한창 공사중이었다. 제 위치를 잡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

줄 날을 기다리며, 문으로 들어섰다.



근정문.
문을 지키는 수문장들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조카는 너무나 신기한지 군사복장을 한 사람들 코 앞에서 뚫어지게 쳐다 보았다.

군사들의 수염을 붙인 코밑에 코가 번들거리는 줄 알았다. 하나 같이 번들거려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수염을 붙인 것이 떨어지지 말라고 붙인 스카치테이프

같았다.

잠시 후 교대 시간인지 뜰을 한 바퀴 순찰을 하는 흉내를 내며 행진을 했다.

조카는 그 행렬을 따라 걸으면서 보조를 맞추고 난리여서 우리는 한참 웃었다.

그리고 마침 설명을 해 주실 분이 계셔서 외국인 두 명과 다른 몇 사람이 같이

다니면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어서 더욱 자세히 둘러볼 수가 있었다.



근정전으로 가서 우리는 정사, 야사를 두루 들으며 웃기도 하고 숙연해지기도 하였다.

조정 대신들의 품계가 적힌 돌 앞에서 서 보기도 하고, 우리 민족의 수난사에 대해, 사신들이

왔을 때의 아픔 등을 느낄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국력이 강해야 임금이나 대통령이 큰 소

리 칠 수 있고, 외교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것을.....

온고지신...

우리의 화려한 궁궐의 규모가 중국의 자금성과 거의 같았다고 한다. 일제시대에 거의 축소되

었고, 그 기록들이 보존되지 않은 것도 많다고 해서 안타까웠다. 지금도 곳곳에 옛 기록에 의

해 여러 전각들이 복원되고 있었다.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에 의해 날조되고 없어진 자료들을

찾는 노력이 더욱 선행되어서, 우리의 경복궁이 하루 빨리 제모습대로 복원되었으면 좋겠다.


근정전 내부...

모든 대소사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니, 대단하다. 그리고 이 근정전은 지금으로 보면 2-3층이나 되는 규모로

높은 천정으로 되어 있다. 왕이 집무하는 건물이라 제일 높은 건물이었다고 한다.



근정전 중앙 천정의 용무늬......

경복궁을 숱하게 왔었지만, 이렇게 자세히 천정까지 쳐다본 건 처음이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황금용이

왕의 권위를 상징하며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자원봉사하시는 분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게된 이 용무늬,

오래오래 마음에 새겨질 것 같다.



근정전 바로 뒤에 위치한 사정전.

왕이 실제적으로 집무를 보시던 편전이었다고 한다. 온돌이 깔려 있지 않아 동쪽의 만춘전, 서쪽의 천추전에서

집무를 많이 보시기도 했다고 한다.




왕의 침전이었던 강령전.

그러나 침수를 드셨다기 보다는 주로 저녁이나 밤에 집무를 보시던 곳이라고 봐야한다.

주무실 때는 교태전이나 후궁들 처소에서 주무셨을 테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왕이라는 분은 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군중 속의 외로움을 느꼈을 것 같다.

사생활이 없는, 24시간 개방 근무???

경복궁을 돌아보면서 생각이 많아지게 된다.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질 수도 있고...

그러나, 시대를 이끌어나가는 사람들은 측근 사람들인 지도 모른다.

설명을 하시는 분도 그러셨다.

예나 지금이나 참모를 잘 두어야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