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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허만하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

허만하

길이 끝나는 데서

산이 시작된다고 그 등산가는 말했다

길이 끝나는 데서

사막이 시작한다고 랭보는 말했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구겨진 지도처럼

로슈지방의 푸른 언덕에 대한

향수를 주머니에 꽂은 채

목발을 짚고 하라르의 모래바다 위를

걷다가, 걷다가 쓰러지는 시인

모래는 상처처럼 쓰리다

시인은 걷기 위하여 걷는다

낙타를 타고 다시 길을 떠난다

마르세이유의 바다는 아프리카의 오지까지 따라온다

눈부신 사구, 목마름, 목마름

영혼도 건조하다

원주민은 쓰레기처럼 상아를 버린다

상아가 되어서라도 살고 싶다

바람은

미래 쪽에서 불어온다

낙타는 십리 밖에서도

물냄새를 맡는다

맑은 영혼은 기어서라도 길 끝에 이르고

그 길 끝에서

다시 스스로의 길을 만든다

지도의 한 부분으로 사라진다

시인 허만하

1952년 대구에서 출생,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으며, 1957년 '문학예술'지의 추천으로 등단

1962년부터 '현대시'편집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 40여년간 작품 활동을 해온 시인은, 부유하는 관념과 이념, 감각의 범람이 극심한 저간의 문학 세태 속에서도 토착적이고 장인적인 시 정신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순수의지와 정열, 가없는 생명애를 바탕으로 한 독자적인 시세계를 펼쳐왔다.

이 시는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라는 제목의 시집에 실린 작품인데, 이 시집은 시인이 1969년 첫시집 '해조'를 낸 이래

30여년 만에 펴내는 두번째 시집으로 무척 뜻깊은 시집이다.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 시집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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