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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추석, 풍요 속의 쓸쓸함



명절증후군.

이미 낯설지 않은 이 낱말이, 다시 살아나는 추석명절이다.

나로선 예전보다는 훨씬 편해졌다.

왜냐하면, 차례를 지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친척들 오는 건 예전과 똑 같지만...

올 설에 이어 두번째로 명절에 차례를 지내지 않게 되었지만, 마음은 그리 가볍지 않다.

일의 원인은 이렇다.

나의 시아버님은 황해도 연백이 고향이신 실향민이시다.

강화 지나 교동도에 가면, 한강 폭보다 좁은 듯한 바다를 사이에 두고, 고향 마을이 훤히 보이시기에

해마다 새해가 되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곤 하시다가, 작년에는 55년인가 만에 그리고 그리던

동생분들을 만나셨다.

원래 8남매의 맏이셨던 아버님은 공산당들의 횡포가 심하던 해방초기에 객지를 떠돌면서 피해다니시

다가 월남하셨고, 6.25때는 카츄사로서 맥아더장군과 함께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셨다. 같은 이유로

뒤늦게 월남한 바로 밑의 남동생분과는 전쟁이 끝난 후, 명동 거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서 두 형제만 서

로 의지하고 50년 이상을 살아오셨다.

작은아버님은 켈로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하셔서, 6.25때는 북한에 침투까지 하셨다고 하실 만큼 두 분은

국군의 핵심부대원으로서 활약이 대단하셨다. 작은 아버님은 월남하기전 대를 잇는다고 어린 나이에 결

혼까지 하고 남한으로 내려오셨기에, 북한에는 그 아들까지 있다고 하신다. 전쟁 중에 작전을 수행하면서

갓난 아기를 만나고 온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모든 것은 연락이 두절이 되었고, 작은 아버님은 새로 장가를 드셨기에 드라마에서만 보던

그런 비극의 주인공이시고 하신 것이다. 그 작은아버님도 북한의 형제와 아들을 만나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 놓은 상태이시지만, 작년에는 우리 아버님만 연세가 많고 아직 건강하시기에 금강산에서 동생들

을 상봉하고 오셨다.

북한에서는 웬만큼 행세하고 살지 않으면 상봉조차 어려운 것 같다는 것이 아버님의 의견이신데, 만나는 틈

틈이 체제 선전을 하고 만세를 부르고 어색한 부분도 있었으나, 아버님은 평생의 소원을 푸신 걸로 만족한다

고 하셨다.

어느 해, 아버님은 꿈에 부모님이 보이는 해를 계기로 그 해부터 제삿날은 알지 못해서 제사는 못 지내고, 명

절마다 차례를 지내오고 있었다. 동생분들을 만나보니, 아버님이 꿈을 꾸던 그 해 어머님이 마저 돌아가셨다

고 한다. 꿈이 맞은 것이다. 그러나, 산소도 북한에 있고 제사와 명절 차례도 그 쪽에서 계속 지내오셨다기에

우리는 지내지 않기로 한 것이다. 식구들 먹을 것과 손님들 오시면 먹을 음식만 장만하면 되니까 나로서는 너

무 편안해졌다. 그러나 나는 좋다기 보다 시집오면서부터 차례를 계속 모셔오다가 갑자기 안 모시려니 뭔가

전한 마음이다.

작은 아버님은 큰댁으로 양자를 가셨다고 한다.

그래서 종손으로서 계속 제사를 지내고 차례를 모시기에, 오히려 작은 댁에 가서 차례를 지내곤 하지만, 전에는

양쪽에 왔다갔다 하면서 지내다가, 요즘은 따로 몇 년을 모셨기에, 아버님과 남편만 작은댁에 가서 차례를 지내

시니 나로서는 만고땡인 셈이다. 그러나, 아버님이나 작은아버님이나 고향에 관한 그리움은 명절에 되면 더 깊어

지시는 것 같다. 명절 이틑날이면 꼭 두분이 만나셔서 교동을 가거나, 망향의 동산을 가기도 하시니까 말이다.

차례도 안 모시고 그래서 올해부터는 친정에 마음놓고 다녀오리라 생각하며 지냈는데, 내가 일거리를 싸들고 오는

바람에 마음이 편치 못하여 올해도 돈만 좀 부치고 전화로만 대신하고 말았다.

멀다는 이유로 아이들 어릴 때는 힘들기도 했고, 직장에 바로 출근해야해서 못 가고, 애들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애들 뒷바라지 하느라 못 가고, 그런 것에서 좀 놓여나니 직장일에 후달리는 나 자신 때문에 못 가고....

늘 씩씩하기만 하시던 친정어머니도, 이제는 마음이 허전하신지...내 몸 걱정에 푹 쉬기만 하라고 하시면서도 쓸쓸

한 마음이 전화선을 따라 흘러온다.

딸 둘, 아들 둘.

손해 볼 것도, 이익 볼 것도 없이 딱 맞아서 경우대로만 살면 된다고 큰소리 치시던 어머니.

막내 아들까지 장가 보내고, 손주까지 보시니 네 자식들 다 제 몫 하고 사니 아무 걱정없다고 하시는 어머니.

데리고 사는 큰아들 내외도,작은 아들 내외도 다 처갓집으로 보내놓고, 어제는 전화하니 혼자 계신단다.

큰 딸이 올해도 못 온다니, 작은 딸도 오늘 남동생들과 합쳐서 지내려고 시댁 시누이들 만나고 온다고...

말로는 모처럼 혼자 있으니 엄청 홀가분하다고 그러시지만....쓸쓸하시겠지.

늘 걱정 별로 안 끼치고 든든한 울타리로 여기시던 맏딸이 이제는 가장 안스러워 보이시나 보다.

늘 내편이 되어 주시는 어머니, 모든 일이 다 잘 되고 있으므로.....

사람에게는 다 시기가 있는 법........

앞으로 몇 년 동안 일이 많아힘들테니까, 그동안 건강하시라고 마음 속 깊이 빌고 또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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