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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기다림의 미학은 알지만....

우리 반에는 마음에 안 들면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는 아이, ㅅ이 있다.

아이들은 그 아이 때문에 노이로제 비슷하게 걸리고, ㅅ이가 소리를 지르면 반 전체가 비상이다.

타이르기도 하고, 엄하게 다루기도 하면서 거의 1년을 지내오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버릇이 잘 못 들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떼를 쓰고, 그것도 안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 아이ㅅ...

웬만하면 다독거리고 소리를 지르면 일단 그대로 둘 때도 있다. 길길이 날뛰다가도 제풀에 지치면, 시무룩해지기도 한다.

한참 소리를 지르는데도 그냥 내버려두고 한참을 그냥 쳐다본다.

그제야, 이제 화 다 풀렸니?

그러면, 네...하고 대답을 한다.

앞에 나와 서서 반성을 해.

누구누구가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고 때려서 그랬다고 또 소리를 지른다. 네가 가만히 있었는데도 네 말을 들어주지 않았어?

그 아이 ㄱ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본다.

둘다 불러서 자초지종을 들어본다. 둘다 문제가 있다.

둘다 반성을 하고 서 있으라고 한다. 친구의 잘못을 생각하지 말고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만 생각하라고 한다.

5분이 지났다. 반성 끝났니?

ㅅ-->ㄱ이 저를 때렸어요. 그래서 소리 질렀어요.

네가 가만히 있는데 때렸어?

친구 잘못을 말하지 말고 자기 잘못을 생각해보라고 했잖아.

ㄱ--> ㅅ이 지우개 안 빌려준다고 먼저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어요.

매일 빌려달라고 하고, 무조건 소리만 지르니까 꼴 보기 싫어서 한 대 때렸어요.

그래서? 네 잘못은 없니?

아직 자기 잘못은 모르고 있구나. 더 반성해

10분이 지났다. 반성이 끝났니?

ㅅ이 먼저 말을 한다. 제가 잘못 했어요.

왜?

소리를 질러서 우리 반 모두 공부를 못 하게 했으니까요....

또?

ㄱ에게 괜히 신경질 부리고, 매일 학용품 안 빌려준다고 소리 질렀어요.

나중에 후회할 걸 왜 그랬니?

아이들이 자기만 무시하는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ㄱ에게... 너는 무엇을 잘못했니?

ㅅ이 평소에 소리를 잘 지르기 때문에 무조건 싫어서, 한 대 때려 준 것이 잘못이예요.

다른 친구가 너 마음에 안 든다고 때리면 좋겠니?

아니예요.

10분이건 20분이건 기다리면 이렇게 자기들 스스로 해결이 된다. 그러나 중간중간 수업을 하면서 따로 그들을 관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매일 그렇게 기다릴 수는 없기에, 나도 아이들도 힘이 들고. ㅅ도 힘이 든다.

기다림은 아름다움을 갖고 있으며 해결책도 제시하는 정말 아름다운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실천하기는 참 힘이 든다.

오늘도 5번의 위기에 세 번은 기다렸고, 두 번은 못 기다렸다. 바쁘지 않은 날은 기다림도 더 많아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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