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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라남북도 내륙

보길도를 찾아서 5/담양 식영정에서

협곡 속의 원림을 빠져나오니, 땡볕에 온몸이 탈 듯 하다.

무더위가 어찌나 심각한지, 조금 전에 언제 시원한 물에 발을 담궜냐는 듯이 작렬하는 태양은 모든 사람들을 비웃는다.

비웃으라지. 우리는 차를 타고 왔던 길로 돌아왔다. 나는 가사문학관을 들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식영정 앞

에 차를 댔다.

'息影亭'이란 '그림자가 쉬고 있는 정자'라는 뜻이니 그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이라는 뜻이리라. 정철이 성산에 와 있던

시절 동문수학하던 친구이자 친척이었던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임억령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정자라고 한다.

언덕 위에 지어진 식영정을 오르려면 돌계단을 걸어올라간다. 정자 주변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무들이 사방을 에워

싸고 마루에 걸터 앉으니, 푸른 호수가 아련하다. 지금은 광주호이지만, 영산강 지류인 고서천에 댐을 쌓아 생긴 호수로,

고서천을 바라보며 선비들이 가사를 읊었을 것이다.


<식영정, 그리고 호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 여러 곳 있지만, 댐으로 인해 수몰된 곳이 많다고 한다.식영정 뒤편에는 성산별곡비가

서 있고, 뒷산은 나무들이 빼곡하다. 시비 뒤쪽으로 언덕을 내려오면, 서하당과 부용당, 그리고 연못이 자리잡고 있다.

연못 앞에는 '송강정철문학의 터' 라는 커다란 비가 또 서 있다. 그 옆에 또 한 채의 건물이 있으며, 주변의 수령 오래된

나무들과 호수와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 없다.

당시 사람들은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을 식영정 사선(四仙)이라 불렀고 그들은 주변의 아름다움을 읊었고, 성산

별곡의 모태가 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며 가사문학의 대가를 이룬 그 분들의 숨결이 느껴지면서 숙연해졌

다. 그런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연못가의 아름드리 나무아래에서는 모녀가 평화롭게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어쩌면 그

리 편안하게 잠을 자는지, 더위에 지친 우리 일행도 같이 쉬고 싶다고 다들 한 마디씩 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우

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이제는 목포로 가는 것이다.

오던 길을 되돌아 나오는 길 역시 목백일홍꽃들이 만발하여 마음은 화사해지고......

길 찾는데 너무 고생을 한 만큼 볼 것은 없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소쇄원과 식영정의 문학적 가치와 의의를 생각하고

자연을 이용한 조상들의 지혜를 생각하니, 대부분 마음이 뿌듯하다고 미소지으며, 오길 잘했다고 한 마디씩 하며 길을

재촉했다.



<부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