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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전라남북도 내륙

보길도를 찾아서 4/담양 소쇄원의 바람이 되어

이젠 소쇄원을 찾아갈 일만 남았다.

담양 시내로 들어가니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아까 음식점 주인에게 물어 두었으나, 이정표가 확실하지가 않고

길을 물어도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람을 못 만나서 한참 고생을 했다. 문제는 그 소쇄원에 대한 이정표가 속속

이어지지 않아서 무척 헷갈리게 되었다.



그래서 좀 쉴 겸 대나무 박물관을 잠시 들렀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전시관 안에는 들어가지 않고, 죽제품 전시

한 곳을 둘러보고, 길을 다시 물은 다음 소쇄원으로 향했다. 그 방향으로 잘 가기는 했는데, 사람들이 이야기한

거리보다 훨씬 먼 거리에서 소쇄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을 수가 있었다.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서 헤매기도 하

여 이미 우리가 예정했던 시간보다 훨씬 지나버렸다.


그러나, 광주호 가는 길은 무척 아름다웠다.

나즈막한 목백일홍이 길 양쪽에 활짝 피어서 오종종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백일홍 색깔이 그렇게 다양하

다는 것도 말만 들었지, 처음 보았다. 보통 많이 보는 분홍빛, 빨간빛은 물론이고, 하얀빛, 보랏빛 등 작고 앙증맞

은 백일홍꽃, 백일 동안이나 오래오래 피어있어 붙여졌다는 그 꽃, 배롱나무꽃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광주호가 보인다. 아련한 호수.

구불구불 돌아가는 길이 너무 아름답다. 송강을 비롯한 가사문학의 대가들이 불후의 명작을 남길만한 경치에

모두 흠뻑 빠진다. 드디어 식영정이 보이고, 가사문학관이 보이고, 드디어 소쇄원에 도착했다.

손꼽히는 한국 정통의 정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1400여평이나 되는 소쇄원, 조광조의 제자였던 소쇄 양산보라

는 분이 그 분의 죽음을 기리며 지었다는 민간 정원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원림이다. 15대 째 후손들이 이 곳을 지

키며 살고 있다고 한다. 소쇄원의 가장 백미는 자연을 그대로 이용하였다는 것이다. 깎아지른 듯한 협곡을 마당으로 두고, 윗쪽에서는 물길이 담장 밑을 통하도록 돌담을 쌓아서 운치가 그저그만이다. 소쇄원은 김인후라는 분이 그린

48영도에 그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고, 내원과 외원으로 구분되어 선비들의 시상을 떠올리게 했던 최적의 장소였

을 것이다.

담장 아래쪽엔 우선 왼쪽으로 산을 배경으로 널찍한 담장이 또 있고,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가파른 폭포가 있어 물소리도 시원하다. 아래쪽엔 협곡 사이에 돌다리를 놓아 입구에서 들어가는 길

을 만들었고 다리 아래에선 더위를 피하며 물놀이를 할 수도 있다. 폭포와 다리 사이에는 자연 협곡과 어우러지게

아름드리 나무들이 무성하여, 오른쪽으로나무들이 무성하여 멀리 뚫린 담장을 배경으로 어찌나 아름답던지!

왼쪽도 역시 주 정자인 광풍각과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듯 하다. 그 뒤로는 제월당이 있다. 한 단 위쪽

산언덕에 위치한 제월당 마루에서 앞을 바라보니 부러울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일행 중 한 언니는 감탄사를 연

발한다.







바로 계곡 앞의 광풍각 마루에 앉으니, 협곡의 물소리가 더위를 다 식히고, 건너편 산언덕의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

지금 후손들이 살고 있는 집이 훤히 보인다. 거기는 수리 중이라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생활의 냄새가 배였으리라.

광풍각과 제월당 사이의 조경도 일품이고 어느 한 곳 손이 가지 않는 곳이 없는 듯하다. 아래쪽엔 공터에 온갖 나무

들이 심겨져 있고 쉴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그 주변은 전부 대숲으로 둘러쳐져 있다. 산쪽으로도 소나무 등 각종 나무들이 빽빽히 심어져 자연 정원을 이루었고,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협곡 건너편 산 역시 곳곳마다 멋스럽다.

光風閣은 송나라 때 명필인 황정견이 춘릉春陵의 주무숙의 인물됨을 얘기할 때 ‘가슴에 품은 뜻을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라고 한 데서 따온 이름이다. 어찌보면 처사로서 양산보의 삶이 마음에 맑고 깨끗함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제월당의 당호인 제월霽月은 ‘비 갠 뒤하늘의 상쾌한 달’을 의미한다. 이곳은 정자가 아니고, 독서를 하면서 조용히

지냈던 곳이라고 한다.

물길 뚫린 담장 밖 위쪽에서는 자연 그늘이 만들어져 널찍한 돌에 앉아 발을 담그니 세상근심을 모두 잊을 수 있을 듯 했다. 또 더 위엔 작은 소가 만들어졌고 작은 폭포 같은돌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청량하다.그 물은 또 어찌나 맑은지! 거울 같은 물 속에 발을 담그니 저 멀리 산 위쪽에 아름드리 나무들이며, 푸른계곡의 싱그러움이 온통 묻어나온다. 아마 세상 정치판에 지친 사림파들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을 잊고 시를 읊조렸을 것이다.

자연이 병풍되어 머무는 곳,

자연이 소리가 되어 바람이 되어

흘러가는 곳

이것이 소쇄원에 대한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 밖에 대봉대, 상봉정사, 여러 곳에 조성되었었다는 정자들, 그 터들....

나는 잠시 동안 소쇄원의 바람이 되어 옛 선비들을 만나고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