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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리고 책

이희섭 시집 『스타카토』

영원과 순간을 넘나들다

 

황경순(시인)

 

이희섭 시집 『스타카토』

황금알

 

 

어디를 향하던 시간인가 누군가 버려두고 간 시계, 아직도 바늘이 돌아가고 있다 지나던 걸음 멈춰 가만 들어보니 초침소리 요란하다 출렁이는 그 속에 붙들려 있던 시간과 남아돌던 생각들, 분초를 다투던 서두름도 일제히 쏟아져 나온다

 

시계를 버리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산채로 버려지는 것들이 내는 간절한 소리를 외면하고 내 몸에 새겨진 시간까지 한 움큼 떼어 내버리는 일 죽지 않은 시간이 돌고 또 돈다

 

어디로 돌아가는 소리인가 잠시 머물다 떠나갈, 세상을 모두 수거해 갈 어둠이 깔리고 미처 회수되지 못해 떠도는 소리가 초조해지는 순간

 

-이희섭 「시간의 집을 버리다」-

 

이희섭의 첫번째 시집은 한 사물을 통하여 많은 사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시인의 아픔과 다양한 사고의 세계를 보여준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마치 마술처럼 연결되어 새로운 담 하나를 훌쩍 뛰어넘는가 하면, 다시 돌아보면 오묘한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듯 하다. 자세히 읽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순간의 진실들이 여기저기 내재되어 있다.

시인은 순간과 영원 사이를 넘나드는 재주가 있다. 『스타카토』라는 시집 제목이 보여주듯이 시인은 가볍게 끊어 노래하는 스타카토의 기법을 비롯하여 쉼표와 마침표 등을 적절히 시에 도입하여 시간의 활용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시간의 집을 버리다」는 그 중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두렵기까지한 시간에 대한 소중함과 경외심이 느껴진다. 버려진 시계인데, 시간이 멈추지 않고 초침이 요란하게 계속 돌아가고 있고 그 출렁이는 시간들 속에서 시인은 숱한 시간의 분신들을 발견한다. 어떤 사람이라도 한 번은 느꼈을 법한 시간에 대한 자각이 어느 날 깊이 와 닿는 것이다.

한가롭게 돌아가는 시간들, 동동거리던 바쁜 시간들의 서두름도 한꺼번에 살아나 시인을 일깨운다. 잊었던 시간에 대한 기억까지 총망라하여 시간에 대한 두려움에 빠진다. 현실은 버려졌지만 시간은 죽어있지 않으므로 산채로 버려진 시간이, 시인의 시간을 침범하여 먹어치울 것 같고, 함부로 낭비해버린 시간들이 한꺼번에 공격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시간은 결코 죽지 않는 것이다.

죽지 않는 시간은 돌고 돌아 ‘어디로 돌아가는 소리인가’ 그 돌아갈 곳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왜냐하면 ‘잠시 머물다 떠나갈, 세상을 모두 수거해 갈 어둠이 깔리고 미처 회수되지 못해 떠도는 소리가 초조해지는 순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삶의 근원으로 보면 돌아갈 곳은 뻔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심장이 멈출 때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꼭 잡으려고 몸부림친다. 이 세상은 그저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일 뿐인 것을, 시간의 집을 지으면 영원히 머물 수 있을까 하여, 역설적으로 시간의 집을 버리는 것일까? 순간에서 느껴지는 존재와 사유에 관한 시인의 아픔은 버려진 시계 속에 녹아 영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