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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리고 책

윤범모 시집 '멀고먼 해우소'

비움의 미학美學

 

황경순(시인)

 

윤범모 시집『멀고 먼 해우소』

시학

 

 

가야산 깊은 밤

덩치 큰 짐승의 할 소리에 잠을 깨다

방문을 여니 찬바람 떼로 몰려오고

맞은편 능선 위의 별 수좌 초롱초롱하다

담장 곁의 깡마른 대나무 선승들

머리 조아리며 증도가證道歌를 암송한다

 

아, 깨어 있구나

모두들 철야 용맹정진하고 있구나

 

멍청한 잠꾸러기 하나

겨우 오줌보나 채우고 있었는데

한 소식 얻은 만물들

기쁨에 겨워 춤추고 있구나

 

캄캄한 밤

염치불구하고 박차는 문

멀고 먼 해우소 가는 길에

드디어 터지는 오도송悟道頌

 

아, 오줌 마렵다!

 

 

-윤범모 「멀고 먼 해우소解憂所-해인사 백련암에서」

 

 

 

 

 

 

 

윤범모 시인의 시집『멀고 먼 해우소』에 수록된 표제시이다.

물질이 풍요해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욕심이 많아졌다. 먹는 것부터 욕심을 버리지 못해 과식, 과음, 과용을 일삼다 보니 성인병에 시달리게 되었다. 시간도 돈도 여유가 생기면서 여행도 많이 다니다 보니 너무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담아오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게 된다. 넘쳐나는 정보들, 넘쳐나는 이미지들 속에 어떤 것이 참모습인지 아리송할 때가 많다.

깊은 밤 산사에서 산짐승 소리에 깨어났는데 찬바람이 떼로 몰려와 존재를 알리고, 별이 수좌가 되어 반짝이고, 대나무 선승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증도가證道歌를 암송한다.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모두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다는 것에 시인은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누구나 한번쯤 이런 경험을 했을 것이다. 나는 자고 있는데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도 육체적 욕망의 증거인 찌꺼기를 비우기 위해 깨어난 시간, 오줌보에 가득찬 욕망들, 잡념들이 너무 수치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것을 떨치기 위해 염치불구하고 문을 박차고 나서는 길, 해우소는 멀고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비움을 위해 ‘해우소 가는 길에 /드디어 터지는 오도송悟道頌! /아, 오줌 마렵다!’ 가장 원초적인 언어를 통해 표현된 게송偈頌, 바로 가장 인간적인 깨달음의 언어이다.

불교의 교리를 잘은 모르지만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의 경지 중 하나가 아닐까? ‘색이나 공에 대한 분별과 집착을 떠나 곧바로 그 실체를 꿰뚫어보라’는 것으로 본다면 해우소 가는 길은 바로 그 경건한 순간이 되지 않을까? 내장의 찌꺼기를 비우기 위해 깨어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었을 또 다른 세계, 바로 마음의 찌꺼기를 비울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행복한 깨달음의 세계로 보인다. 텅 빈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든 일상에서 비우기를 갈망하는 시인은, ‘멀고 먼 해우소’라 표현한 것으로 보아 자신의 깨달음조차 겸손하게 여긴다. 언제나 깨어 있고 싶은 시인, 잠자는 순간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정진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 시를 비롯하여 여러 작품들을 읽다 보니 깨달음을 향한 시인의 끊임없는 구도 자세에 숙연해진다. 언어적인 표현은 다소 거칠기도 하지만, 고상함을 벗어던지고 어린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 비속어로 내지르는 원초적인 말들로 인해 더 오묘한 진리의 세계가 와 닿는다. 나도 덩달아 내장과 마음의 찌꺼기가 비워져 온몸이 가벼워진다. 시인도 비우고 독자에게도 비움을 체감하게 하는 시, 그리하여 비움의 미학은 절정에 이른다.

지금 이 시간, 지구는 양분兩分되어 있다. 넘치는 자와 모자라는 자들의 그룹이다. 물질이 너무 넘쳐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는가 하면, 너무 채우지 못해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다. 자만이 극에 달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자존감이 하나도 없어 자살하는 사람들도 우글거린다. 이 시집을 읽으며 물질이나 정신이 넘치는 분들은 비움을 배워 모자라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채워주면 어떨까 싶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비어 있다는 것은 진리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위로를 해주고 싶다. 생뚱맞은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