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택 시선집 『감촉』(뿔, 웅진문학에디션)에서
폐점
문을 닫은 지 오랜 상점 본다
자정 지나 인적 뜸할 때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인형
한때는 옷을 걸치고 있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불현듯 귀기(鬼氣)가 서려오고
등에 서늘함이 밀려오는 순간
이곳을 처음 열 때의 여자를 기억한다
창을 닦고 물을 뿌리고 있었다
옷을 걸개에 거느라 허리춤이 드러나 있었다
아이도 있었고 커피 잔도 있었다
작은 이면 도로 작은 생의 고샅길
오토바이 한 대 지나가며
배기가스를 뿜어대는 유리문 밖
어느 먼 기억들이 사는 집이 그럴 것이다
어느 일생도 그럴 것이다
●●●● 불이 하나 둘씩 꺼져가는 작은 거리, 실체를 잃어버리고 자리만 지키고 있는 문 닫은 점포가 폐경을 맞은 여인네의 쓸쓸한 미소 같다. 누구에게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필연적으로, 혹은 우연히 다가온 불행은 당황스럽고 냉소적이다. 그러나, 삶이 녹녹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야 비로소 동질감을 찾아 헤매는 삶의 뒤안길은, 자리를 지키는 한 끝이 아니다. 닫힌다는 것은 멈춤이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시작이 아닐까? (시인 황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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