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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그리고 책

나비경기장에서의 패자부활전/박정원/시산맥작품상추천평

 

-2013 시산맥 여름호-

 

 

나비경기장에서의 패자부활전

                                       박정원

 

  나비가 경영하는 경기장에 입장한다.

 

  스카이박스에 앉아보면 와와솨솨―, 식상한 잠언들이 갯바위처럼 철

썩거려 제왕나비만이 유일하게 해법카드를 긁어대는 곳.

 

  탈루(脫漏)라는 스위스계좌 족쇄에 묶였던지 인간의 영혼을 가진 사

막 저쪽의 제왕 한 분, 갑자기 궁색한 호랑나비로 망명한다.

 

  말춤이나 팡팡춤도 그때뿐, 가시 돋친 우울모드가 지구의(地球儀) 전

광판에 극소수 나비군(群)의 암투라는 기사를 연일 게재한다.

 

  얹혀살던 각자의 제왕들께서 뼛속의 부패정도를 심층 진단하던 날 아침,

지리멸렬한 게임이라고 눈치 챈 나비들만이 침체기장세를 그득 메운다.

 

  누가 부리느냐에 따라 말은 한통속의 늪, 아니면 한 스푼 수렁이라는

부익부빈익빈에 대한 플라이급 정의.

 

  초경량골조에 뻥 뚫린 구멍이 언제쯤 구원투수로 등판될까.

관중석 밑바닥을 먹고 사는 휴지조각들이 나비복권만 열심히 긁고 있다.

 

 

 

 

[추천사유]

 

 

  시는 일단 끌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참신해야 하고, 또 그 참신함이 그냥 하나의 단어에 그치거나 논리적으로 뒷받침되지 못하면 헛된 상상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일단 이 시에 끌린 이유는 ‘나비’라는 단어 때문이다.

  아, 나비! 나비는 사는 곳이 대체적으로 정해져 있지만,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의 혼을 잡아끈다. 평이나 감상을 쓸 때는 한 번 끌리면 그저 일사천리로 글을 써내려가는 편인데, 막상 쓰려니 어떻게 써야할지 선뜻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사실 경기장에 가 본 기억이 너무 오래되어서 경기장의 분위기를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한때 야구를 응원하던 그 추억, 요즘도 매일 뉴스로 접하는 그 열기로 경기장의 분위기를 모처럼 느껴 보았다. 선수들의 그 다양한 몸동작, 응원하는 그 열기, 그러나 특히 희비의 쌍곡선이 교차하는 경기장에서는 기쁨과 슬픔의 차이가 완연하다. 말춤이나 캉캉춤 등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치어걸들의 몸동작은 무척 흥겹고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어깨춤이 저절로 나오지만, 선수들의 희비는 물론이고 각자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고 질 때의 감정이입이 심한 곳도 경기장이 아닌가 싶다. 특히 그 남성적인 열기는 현실에 지친 사람들의 관심을 심각한 경쟁구도 속에서 벗어나 카타르시스로 이끌기도 하고, 졌을 때는 난동을 피우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시인은 이런 다양한 사람들의 심리를 나비경기장에 투영시킨 것이 경이롭다. 이 경기장은 답답한 정치판으로 클로즈업되기도 하고,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판으로 이동하기도 한다. 시인의 경기 관망태도는 매우 비관적이지만 마지막에는 희망으로 마무리를 한다. 나비복권에 기대를 걸 수 있으므로…….

  나비가 경영하는 경기장이지만 나비가 뜻하는 바는 여러 가지 중의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시의 특별한 점이다. 요즘 들어 나비가 많이 등장한다. 가수 이름도 있고, 대중가요의 가사에도 많이 나오며, 영화에도 등장한다. 이 시를 쓴 시인이 언급한 복권에도 나비가 등장한다.

  또한 이 시를 읽으면 등장하는 나비가 어떤 나비일지도 상상을 해 보게 된다. 배추흰나비, 검정부전나비, 푸른부전나비, 모시나비, 노랑나비, 호랑나비, 제비나비……. 나비의 색깔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도 해석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순수한 노래 속에 나오는 노랑나비, 화려한 것으로 묘사되는 나비부인, 죽은 자의 무덤가에 날아다니는 검은 나비…….

  패자부활전이라는 단어도 주목할 만하다. 인생은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다. 패자부활전이 존재하기 때문에 살만한 가치가 있다. 인생이라는 가장 큰 경기를 치루면서 우리는 숱한 절망을 견뎌야 한다. 이 시가 좋은 나비효과를 발생시켜, 사람들의 마음속에 희망이라는 삶으로 증폭되기를 기대해 본다.

 

 

 

추천: 황경순

2006년 <미네르바> 등단 시집으로 <나는 오늘, 바닷물이 되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