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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시

스스로 팔 자르는 나무/참나마을 가을 둘레길 시모음집

스스로 팔 자르는 나무

 

황경순

 

가문비나무 숲에 가면

총알자국이 뻥뻥 뚫려 있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흡사 전쟁의 흔적처럼 무수한 구멍들.

 

그래, 전쟁은 전쟁이지.

자신과의 무수한 전쟁을 치르는 가문비나무.

하늘을 향해 곧게곧게 사오십 미터나 자라려면

절반 이상은 군더더기 없이 미끈한 터전을 만들어야 하므로

무수한 팔을 스스로 자르고

위로만 수액을 집중한다.

 

게다가

살과 피를 내 주며 치유한 구멍들은

숱한 벌레들의 집으로 내어준다.

 

오직 하나의 삶을 위하여

무수한 상처 쯤은 아무렇지도 않고

다른 생명들이 드나들어야 힘이 나는 듯

상처 투성이의 가문비나무가,

뻥 뚫린 구멍마다

휑 하니 드나드는 비바람을 불러

*하이소프라노로 애절한 천상의 노래를 부른다.

 

오늘도

가장 높은 곳의

큰 구멍 하나가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숨을 힘차게 몰아쉬고 있다.

 

 

* '마틴 슐레스케'의 가문비나무의 노래에서 인용, 바이올린 장인의 저서로 가문비나무는 바이올린의 울림통으로 쓴다고 한다.

 

<황경순 약력>

 

2006미네르바등단,

            시집 나는 오늘, 바닷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