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보이는 사물마다
중구난방 있는 것 같아도
다 할 말이 있고
혼이 깃들어 있고
하는 일마다
보잘것없어 보여도
뜻이 있고 길이 있다.
게으름을 피우다 8년 만에 세 번째 시집을 묶는다.
여전히
백합꽃은 눈부시다.
새로운 빛깔과 향기로 거듭나고 싶다.
2024년 8월
황경순
꽃이 새가 되는 시간
훠이이 봄바람에 꽃비 내리면
벚꽃은 낱낱이 부서지고 흩어진다
그윽한 향기도
낭창낭창 흐르던 다섯 꽃잎의
우아한 자태는 사라져도
새로운 몸이 생긴다
더 이상 떨어질 걱정도 없이
그리운 나무 밑에서
기다란 띠 모양 꽃무덤이 생긴다
꽃무덤은 바람 따라 춤을 추며
마음대로 모습을 바꾸고
바람 따라 훨훨 날아간다
꽃이 진다고
세상이 끝난 것이 아니다
새 세상을 위한
아름다운 비행을 한다
슬픔의 각도
무작정 슬퍼질 때가 있다 배우자나 자식이 맘에 하나도 안 들고 직장에서도 친한 친구도 아무도 내 맘을 몰라줄 때 사는 게 시큰둥하고 꼼짝하기도 싫고
무진장 슬퍼질 때도 있다 청천벽력같이 돌연사한 친구나 더 견딜 줄 알았는데 홀연히 떠난 친구나 코로나라고 장례식장도 못 가고 보내버린 가족 때문에 분노까지 치밀고
무턱대고 슬플 때도 있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도 속없이 푸른 하늘, 예전 그대로 화려하게 피는 꽃들 봐도 눈물 나고 드라마 속 불륜에 욕하다가도 약자가 되어 펑펑 울기도 하고 트로트 열풍에 따라 부르며 울기도 하고
슬픔의 각도기로 잴 수만 있다면 꼭 그만큼만 슬퍼할 수 있고 꼭 이만큼만 슬퍼하라고 위로할 수도 있을 텐데
측량할 수 없는
슬픔의 각도
거꾸로 보는 일상의 세계
황경순 시집 『꽃이 새가 되는 순간』을 읽으며 생각하게 된 것은 시를 포함한 예술이 지 향하는 가장 중요한 지점 가운데 하나는 세상 혹은 사물을 거꾸로 보고자 한다는 사실 이다. 여기에는 이미 확정된 사실이나 과학의 이름으로 규정된 숫자로는 인간의 궁극 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절실함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거꾸로 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 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에 대한 인식의 배반을 요구받기 때문에 정작 예술가 자신이 보편적 일상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누락되기 일쑤인 까닭이다. 황경순 시인은 적어도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보편성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 또는 질 문에 대한 자신의 답이 시의 형식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이 경우 시는 세 계에 대한 탐구의 한 형식인 셈이다. -출판사 서평-
'발표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나무/황경순/후아이엠인터넷신문/토닥토닥시 게재/2017년03월05일 00시01분 (5) | 2017.04.17 |
---|---|
두번째 시집'거대한 탁본' 발간 (0) | 2017.02.25 |
스스로 팔 자르는 나무/참나마을 가을 둘레길 시모음집 (0) | 2015.01.09 |
벚꽃 열차/2014 문학과창작 봄호 (0) | 2015.01.09 |
물의 주파수 (7) | 2013.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