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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해안 북부

꽃지 해수욕장의 겨울

꽃지해수욕장의 겨울

1월 넷째 주 주말, 안면도로 떠났다.

워크샵을 떠난 거라 내 맘대로 여기저기 다닐 수 없었지만, 안면도 겨울 꽃지 해변은 한가하면서도 바다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여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재작년인가 동료들과 안면도의 어느 펜션을 찾았을 때는 여름이나, 초록빛과 가지각색의 꽃들이 온몸을 즐겁게 했다. 이번에는 겨울이라, 바다의 제 모습을 더욱 잘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초록의 싱그러움이 없어도, 온갖 꽃들의 향기와 자태가 없어도 바다는 역시 당당하고 웅장한 제 모습이 제격이다.

우리가 묵은 오션캐슬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나는 일행들에게 핀잔을 들을 각오를 하고 잠시 대오를 이탈하여 해변에서 일몰을 제대로 감상할 작정이었지만, 전화로 하도 찾아대는 바람에 꽃지해수욕장에서 할아버지바위와 할머니 바위 사이로 보이는 일몰을 만끽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꽃지에 가면 늘 직접 그 일몰을 보고 싶었는데 번번이 실패다. 언젠가 많은 시간이 주어져서 며칠 묵을 기회가 되면 좋겠다.

그러나, 해가 막 지려고 하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은 충분히 볼 수 있었다. 어찌나 황홀한 모습으로 넘어가던지, 일몰의 아름다움은 아무리 찬양을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아름다움을 적절히 표현할 말이 부족하니 아쉬울 뿐이다. 한겨울 바다는, 바람이 정말 심했다. 바람에 날아갈 듯 하면서, 꽁꽁 언 손을 녹이면서도 마음 맞는 후배와 평소에 바빠서 못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고, 또한 일몰 전의 그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었으니, 뿌듯한 시간이었다.

오션캐슬의 9층에서는 그 날 뜬 해의 마지막 모습을 설레는 마음으로 지켜볼 수가 있었다. 바다 한 가운데 수평선 위로 넘어가는 해는, 장엄하다는 표현 밖에 할 말이 없었다. 일렁이는 바닷물을 일직선으로 붉게 물들이며 일렁이는 반영은, 내 가슴 속에 일렁이는 한 덩이 불덩이 같았다. 수평선 위에 꼴깍 넘어가려는 붉은 해 주변의 하늘은 낮게 깔린 구름까지 은은히 물들이며 엄숙한 모습으로 좌중을 둘러보는 황제의 얼굴이라고나 할까? 함부로 우러러 볼 수 없는 그런! 안타깝게도 마지막에 낮게 수평선에 드리운 구름층 때문에 꼴깍 넘어가는 모습은 상상에 맡길 수 밖에 없었지만, 그 감동의 여운은 한 동안 가슴에 남아 있었다.

오션캐슬에 묵은 것은 처음이었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스파에서 온천욕을 즐기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전 날 과음한 탓에 새벽에 일어날 수가 없었으니까.바다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노천 온천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사람들은 추운 날도 더운 기운을 내뿜으며 겨울 여행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만 먼 발치에서 바라보았다. 밖은 꽁꽁 어는데 노천탕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요즘은 겨울인데도, 겨울바다를 찾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이 곳은 물론 숙소가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더 그렇겠지만, 해변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져 하나가 된 모습, 한여름의 그 북적거리는 사람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이 아닐지…….

바람 부는 바닷가, 하얀 모래의 감촉을 느끼면서 걸으면,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다. 어쩌다 까만 갯바위를 만나면 그 위에 올라가 포즈를 잡기도 하고, 배를 고정시키려던 것인지, 끈에 묶인 커다란 벽돌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기도 했다. 저것이 누구의 명에 의해 저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하고,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사람들은 자연 속에 가면 동심으로 돌아간다. 해변에 널린 조개껍데기가 보석처럼 빛나,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또, 까만 돌, 하얀 돌, 에메랄드빛 돌 등 작은 자갈 하나라도 소중한 것인지, 주워 들고 모양, 빛깔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이름붙이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이 조약돌은 곰을 닮았느니, 돌고래를 닮았다느니, 저 바위는 매를 닮았다느니……. 어린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이나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서, 뛰어다니며 소탈한 마음으로 자연과의 대화를 원한다. 무엇에나 의미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중에 하나인가 보다.

목적은 하나였지만, 사람들마다 받아들이기는 다른 이번 여행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무조건 떠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일의 연장이라고 볼 때 그리 내켜하지 않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다. 여행이란 장소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기도 했다. 가슴 한 구석이 아린, 모두에게 그저 행복하지만은 않은 여행이란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밤바다는 또다른 운치가 있다.

한여름이었다면, 사람들로 넘쳐날 해변은 텅 비어 있었다. 폭죽 파는 아주머니의 노점이 횟집 앞에 서 있어, 또다시 동심으로 접어 들어 불꽃놀이도 했다. 사람처럼 위대한 동물이 있던가? 불도 만들고 해도 달도 만들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밤하늘, 별 속으로 별들을 올려 보낸다. 별은 공기를 가르고 우주 속으로 떠났다. 안녕~~

오션캐슬의 뜰은 각종 조각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다를 향해 늘 저렇게 서 있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바닷가 쪽 쉼터 의자 너머로 보이는 바다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소나무가 바람을 막아주어 고맙다고 말이라도 주고 받는 것일까? 왜 그런 쓸데없는 공상 속으로 자꾸 들어가는지 모를 일이었다. 자연 속에 가면 시각이 달라지듯이, 머릿속도 생각의 범위가 그렇게 넓어지나 보다.

여행을 오면 수순대로 음식점과 노래방 등을 가야했지만, 나와 후배가 탈선을 했다. 이 좋은 밤바다를 두고 노래방의 그 밀폐된 공간으로 갈 수는 없다고. 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바닷가 벤치에 앉아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기다리다 숙소로 돌아갔다고……. 그래도 그냥 밤을 보낼 수는 없었다. 바둑 두는 사람들, 그리고 이미 잠자리에 든 사람들을 깨워 술을 먹였다. 덕분에 취해서 우리 방으로 돌아와 푹 잘 수 있었다.

가면서 들른 간월암.

간월도 역시 제 자리를 지키는 모습이 씩씩해 보였다. 여름에는 꽃도 피고 나무들이 푸르름으로 섬을 더욱 감쌌지만, 약간 마른 댓잎이 힘겨워 보이고, 소나무의 푸르름 마저 간월암의 존재에 눌려 빛을 잃었다. 그만큼 섬이나 암자는 더욱 제 몫을 하고 있는 셈이 아닐지? 빛 바랜 단청이 웬지 가슴이 아프다. 바닷가를 향해 선 작은 누각 안, 탱화가 그려져 있고, 복전함이 놓여 있다. 바다를 향해 저렇게 가까이 있는 곳은 아마 드물 것이다.

또 그 담장에서 직각으로 꺾인 곳에는 또 다른 복전함이 놓여 있다. 소원을 소원지에 적어서 가운데에서 만국기 매다는 끈처럼 묶인 끈에 묵고 소원을 빌라고 쓰여 있었다. 아마 새해라 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겠지만, 2년 전에도 지붕을 그냥 씌워 놓기만 하고 어수선하던 건물 하나가 아직도 그래도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그렇게 방치를 한 것일까? 그 건물의 벽면은 낙서의 벽이다. 한 사람이 하면 따라 하게 되는 것이 낙서인데, 일부러 낙서의 벽으로 허용을 한 것일까? 철거를 위해서 그랬을까? 아무튼 잠시 잡념에 빠졌다가 세상으로 돌아왔다.

주차장으로 쓰이는 언덕배기의 소나무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바다를 바라보며, 어쩌면 한숨 돌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의 입소문을 탔는지, 어마어마한 시설에 투자한 덕분인지 굴밥 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여행의 또 하나의 조건이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시 이름만큼 깔끔하면서도 푸짐하게 나와서 사람들을 실망시키지는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는 못했어도, 후배와 이야기를 많이 한 것이 가장 유익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