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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침향沈香 매향埋香 외 /정호정

침향沈香 매향埋香

정호정

하늘을 봐도 구름을 봐도

숲을 봐도 물을 봐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서향瑞香나무는 베어놨는데

하늘에 묻어야 하나

구름에 묻어야 하나

숲속 물속 어디에 묻어야 하나

생각의 실마리를 찾아가는데

문득 가슴이 저려왔다 아리고 아리다

순정한 시절의 아름다운 생각들

눈물이 났다

향기의 서향나무들

천년을 바라 내 안에 묻어두기로 했다.

이중섭의 아이들

벌거벗은 아이들이

엎어지며 자빠지며

다섯 개의 동그란 발가락들을

발딱발딱 들어 보이는데,

물고기를 낚으며

물고기를 안아보며

물고기를 높이 들어 올리며

게와 나비와 꽃들과도 어울려 노는데

잘 노는 아이들 중에 어느 한 아이도

진짜 이중섭의 아이가 아니라

수군대는 사람들

틈에서

나 오래 머물지 못하였다

사람들 틈을 헤치고 나와

한참을 걷고 걸어도

아이들 뒹구는 모습 아물아물

오래도록 눈에 삼삼하였다.

토르소

목도 팔도 다 잘린

은행나무

몸통에 마직 붕대를

둘둘 감았다

너 어디서 왔니?

대답할 입이 없구나.

어리뿔개미, 별을 바라보다

수백만 년 땅에 묻혔던 타임캡슐

투명한 호박琥珀 속에 어리뿔개미

한 마리 들어 있다

머리와 가슴, 배와 허리는 분간이 가는데 머리에 붙어

있을 한쌍의 더듬이며 겹눈, 세 개의 홑눈들과 황갈색의

긴 털들, 다리의 마디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어디쯤 붙어

있을 것인지

어떻게 생겼을 것인지 어림짐작으로 더듬이를 보고 구

부러지는 더듬이의 마디를 보고 겹눈을 보고 홑눈들을 보

고 황갈색의 긴 털들을 보지만 눈을 씻어가며 보고 다시

보아도 캄캄하기만 하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온 어리뿔개미 한 마리

원시 호리허리벌을 닮은 어리뿔개미,

잘 보이기도 하고 아물아물 아득해지기도 하는

별을 바라본다.

정호정 시인

경기 안산 출생

수도여사대 국문과 졸업

1998년 '문학과창작' 신인상

시집 '프로스트의 샘', '묘상일지', '침향 매향'

2003년 문예진흥원 문예진흥기금

2007년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