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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바닷가 민박집/이생진

바닷가 민박집

이생진

바닷가 민박집
여기다 배낭을 내려놓고
라면 상자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는다
그리고 커피 한잔 옆에 놨다
오른 쪽 창문으로는 바다가 보이고
‘바다가 보이면 됐어’
이건 거창하게도
내 인생 철학이다
철학이 없어도 되는데
80이 넘도록 철학도 없이 산다고 할까 봐
체면상 내건 현수막이다

‘바다가 보이면 됐어’
인사동에 모인 젊은 친구들이
낙원호프집에서 부르는 구호도 이거다
그런데 이 민박집에서는 진짜 바다가 보인다
그래서 나는 호프집보다 이 민박집이 좋다

바다는 누가 보든 말든 제 열정에 취해 여기까지 뛰어든다
그 모습이 나만 보고 달려오는 것 같아 반갑다
다시 돌아갈 때는 모든 이별을 한꺼번에 당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그 바다가 창 밖에 있으니
보호자 옆에 있는 것 같아 든든하다

 

***

시인이 시를 쓰신 민박집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에서도 바다가 보이니까

어디든지 좋아하실 것 같다.

제주는 바다와 하늘빛이 어디나 서로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