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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해안 북부

검은 학의 비상/학암포(鶴巖浦)에서

'태안해상국립공원'이라는 이름에 맞게 태안의 해안선은 무척 아름답다. 만리포를 기점으로 아래쪽으로는 어은돌, 파도리, 통개,연포, 원인 해수욕장이 안면도로 들어가기 전에 즐비해 있다. 그 뿐인가? 그 사이사이에 이름 없는 작은 해변들까지 제각각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이번에 간 곳은 만리포에서 위쪽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렇다고 다 들를 수 있는 시간은 안 되고, 거의 가장 위쪽에 위치한 학암포까지 가보기로 했다. 학암포역시 20년 전후에 갔던 것 같다. 거기에서 오토캠핑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 때, 그 검은 바위들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떠올랐기 때문이고, 일행들은 모두 한 번도 안 가본 곳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만리포 윗쪽은 천리포, 백리포, 방주골, 의향, 구름포, 신두리,구례포, 학암포, 사목, 꾸지나무해수욕장 등이 있다. 이 쪽에도 사이사이 알려지지 않은 작은 해변들이 많다는 것도 아래쪽과 비슷하다. 이 쪽으로 달리다 보니, 운전하기가 아슬아슬했다. 눈이 많이 왔기 때문이다. 여름철이라면 피서객들로 길이 반질반질해졌겠지만, 겨울이라 이번 겨울에 서산, 당진 쪽에 눈이 많이 내려, 비닐하우스 등 농사용 건물들이 피해를 많이 입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뉴스로만 보던 광경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이 쪽에도 인삼밭이 꽤 많았는데, 인삼을 가린 검은 차양막들이 누워 있는 곳도 많았고, 비닐하우스도 망가진 곳이 보였다. 또한 도로의 가장자리에는 치워놓은 눈들이 쌓여 있었고, 도로 한 가운데에도 바퀴 자국만 빼고 얼어붙은 곳도 많아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을 해야만 했다. 어느 산 귀퉁이를 돌았더니, 차량 두 대가 비탈길을 오르다가 미끄러져 세워져 있고, 한 대에는 아예 운전자도 보이질 않았다. 한 대는 차를 겨우 돌려서 다시 되돌아서 우리가 가는 방향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그래도 다니는 차량 통행이 없어서 우리는 유유히 잘 빠져 나갈 수 있었다. 아마 우리 차가 해안쪽으로 돌다 보니, 주된 도로를 벗어나 샛길로 접어 들어 눈이 잘 안 치워져 있었나 보다. 겁은 났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논밭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겨울의 정취를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어떤 곳은 비포장된 곳으로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도 했지만, 다시 주도로를 만나 커다란 만을 지나기도 하고, 예쁜 펜션들을 지나기도 했다.

꽤 시간이 걸려 드디어 학암포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런데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듯 했다. 그 때는 한참 복잡한 여름이었지만, 지금은 들어가는 차 한 대도 보이지 않는 한가로운 곳,그리고 사람들도 해변을 거니는 한 쌍의 연인뿐이었다. 물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소분점도가 목까지 물에 잠긴 사람처럼 반겨주었다. 그 옆에 보이는 검은 바위들, 썰물 때는 까맣게 드러나던 바위들이 그 검은 자태를 숨기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섬들, 가까이 만들어 놓은 나즈막한 울타리들과 모래, 그리고 바닷물, 오후 4시의 바다는 석양으로 약간 물들어 아련한 느낌을 준다. 마른 풀 위에 찰싹 달라붙은 하얀 잔설 또한 보기 드문 풍경이리라.




해변 쪽으로 걸어나가자, 학암포의 위용이 드러난다. 왼쪽으로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 단단하게 다져져서 발자국도 안 남겨진다. 만리포와는 또다른 느낌의 해수욕장, 주변에 화장실 건물도 깔끔하게 만들어놓았다. 잔잔한 물 위로 은은히 부서지는 햇살, 거울처럼 마음을 비춰주는 듯도 한 바다에 빠져 있을 때, 코란도 한 대가 저 멀리서 아스팔트를 달리듯 순식간에 달려왔다가 눈앞에서 금방 사라진다.

소분점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하다가 오른쪽을 보니 작은 언덕 위에 뭔가가 보인다. 그 쪽에 섬이 있었던 듯 한데, 어쩐지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큰 섬이 따로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시멘트길로 이어져 자동차로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일단 작은 언덕에 오르니, 학암포를 상징하는검은 학이 육지쪽을 향해서 비상하고 있다.학은 바다를 향해 날아가고 싶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스쳐갔지만, 이내 학은 갈매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미치자, 당연하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학암포(鶴岩浦)라는이름은 참 낭만적이다. 검은 바위 하나가 학을 닮았다 하여 붙였다는 설과 학이 노닌다는 뜻으로 붙였다는 설, 포구의 모양이 학이 날개를 편 형상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어떤 어원이든 학암포는 그 이름 못지않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의 섬이다. 넓고 고운 백사장, 기암괴석으로 단장된 해안, 조가비들이 다닥다닥 엉겨 붙은 포구로, 갯바위 등이 그윽한 정취를 선사하고 각종 괴목과 동백, 난초 등도 어우러진다고 한다. 그리고 학암포를 상징하는 새의 동상이 있는 언덕을 중심으로 왼쪽의 백사장과 오른쪽의 백사장으로 나눌 수 있고, 오른쪽에는 마을이 있고 포구도 이어져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예전에는 없었던 것인데, 대분점도를 이으면서 방파제를 만든 듯 하다. 나의 짐작이고 정확한 정보는 아니다. 소분점도가 보이는 왼쪽 백사장에서 보면, 배가 보이지 않고, 이 언덕에 완전히 가려서 숨겨놓은 포구 같다. 언덕에서 본 사방의 모습이다.

언덕위에서 왼쪽 해변부터 시계방향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첫번째 사진은 왼쪽 해변,다음 사진은 바다 쪽으로 검은 학이 비상하고 있으며, 아래쪽 첫번째 사진은 좀더 방향을 틀어서바다쪽을 확대하듯이 보면 바로 소분점도가 보인다. 소분점도에서 학이 육지쪽을 향해 날아든다고나 할까? 그 다음은멀리서 보면 숨겨놓은 듯한 길과 포구쪽이고 섬은 바로 대분점도이다. 분점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예전부터 이곳은 분점포라 하여 조선시대부터 중국 상인들과 교역하며 질그릇을 수출하던 무역항이었는데,해수욕장을 개장하면서 앞에서 말한 설대로 이름을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방파제를 쌓은 안쪽으로 배들이 보이는데 바로 낚시꾼들을 위한 배라고 한다. 이 곳에는 대분점도 뒤쪽으로 가파른 바위에서 갯바위 낚시가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그 다음 사진은 정자가 보이는 방향으로 보면 방파제 끝이 보이고수평선과 섬들이 보이는 바다쪽이다. 오른쪽 사진은오른쪽 해변이 보이는 쪽으로 마을과 숙박업소 등이 있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학암포라는 지명은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언덕이 학의 목이 되고, 이 동상은 바로 머리와 부리를 쳐든 형상이며, 왼쪽 해변과 오른쪽 해변은 날개를 편 형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는 저 대점분도가 학의 머리이고, 이어진 바다, 지금은 길이 이어진 곳이 바로 목이라면, 양쪽의 해변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이 되는 것이다. 아니면, 소점분도가 물에 잠기지 않았을 때, 그 섬이 학의 머리가 되고, 그 길은 학의 목처럼 길게 길로 이어지고, 역시 두 해변은 날개를 활짝 펴고, 서해바다 저 멀리 날아갈 준비를 하는 것일까? 그 머리가 물에 잠긴 그 때는 학이 물속에 목을 넣고 고개만 쳐들고 먹이를 물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양쪽의 해변은 정말 그 각도가 날개를 편 형상인 것처럼 내 맘에 깊이 새겨졌다.

소점분도나 대분점도나 모두 검은 바위들이 주종이니.........내가 생각하기에는 이 설이 가장 유력하지 않을까 하고 깊이깊이 생각을 해 보았다. 참 웃기는 일인 것 같지만.....상상은 어디까지나 자유이니까!




생각의 날개를 접고 언덕 아래로 내려가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아래의 사진들도 참 재미있다. 먼저 첫번째 사진은 학이 있던 언덕과 대분점도 사이에 길이 나 있는 쪽을 왼쪽의 해변에서 찍은 사진이다.길을 돌아들면 두 번째 사진의 대분점도의 한쪽의 멋진 바위들이 나오고 그 바위에는 하얀 따개비들과 조개, 굴들을 비롯한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기도 한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시 눈을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방파제가 나오고 해변쪽으로 아늑하게 정박한 배들이 고깃배들이 낚시꾼들을 기다리거나 고기잡이를 준비하고 있으며, 멀리 태안화력발전소가 보이고, 송전탑들이 보이고 넓은 해변이 여름을 기다리고 있다. 또 눈을 좀더 돌리면, 마을이 밀집한 곳으로 여러 척의 배들이 묶여 있다.

이 쪽 백사장에서 보면, 여기의 배들과 대분점도가 더욱 더 멋있게 보여, 사람들을 유혹하지 않을까?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하여, 그 쪽 해변 쪽은 들르지 못했다.

이 학암포는 단체에서 많이 오는 곳이기도 하다. 양쪽으로 펼쳐진 넓은 백사장과 검은 바위들, 그리고 대점분도와 소점분도의 검은 바위들이 만들어내는 멋드러진 풍경, 낚시를 비롯한 다양한 갯바위 체험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또한 소점분도는 밀물 때는 바로 건너갈 수도 있고 바위가 검은 위용을 더욱 자랑하여 또다른 재미를 준다고 할 수 있다. 오래 전에 서너살 된 두 딸아이들과 텐트를 가지고 야영하던 기억이 새롭다. 차와 이어서 오토캠핑을 할 수 있어서 무척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그 때는 거의 황무지나 다름없었는데, 모든 시설이 무척 좋아졌다는 것을 볼 수 있어서 여름에 꼭 한 번 오고 싶다. 낚시배를 타고 소분점도, 대분점도 주변을 돌면 더욱 아름다울 것 같다. 낚시는 취미 없지만....






그 밖에도 태안은 정말 서해의 보물 중 하나이다.

안면도는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가? 꽃박람회장, 꽃지해수욕장, 송림, 휴양림과 방갈로, 천상병 시인의 생가, 그리고 안면도 양쪽으로 청정해역에 밀집한 해수욕장들....

안면도로 내려가자면 첫번째 몽산포도 아주 거대한 백사장을 자랑한다. 차가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모래사장이 단단하고, 백사장의 폭도 엄청 넓다. 밀물이 되면 백사장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15년 전쯤에는 몽산포를 자주 갔다. 그 근처에 남편의 후배가 귀농을 해서 원예업을 하고 살아서 아이들 데리고 몽산포 근처의 작은 해변에서 수영도 하고, 게도 많이 잡았다. 아이들도 그 전의 기억들은 다 없지만, 거기서 놀던 기억은 생생하다고 한다. 그 해변은 완전히 전세를 낸 것 같았다. 집에서 아예수영복들을 입고 커다란 에어매트며 튜브를 들고 가서 하루 종일 놀고, 어른들은 파라솔 갖다 놓고 집에서 준비해온 음식을 먹으며 정말 신나게 놀았기 때문이다. 작은 해변이 심심하면 근처 해수욕장을 두루 가서 사람들 틈에 끼여 여름의 혼잡함을 동시에 즐기기도 했던....

어째 이번은 회고 여행을 한 기분이다. 일행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니 모두 너무 부러워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숙박장소로 정한 당진 왜목마을로 향했다.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매력에 전부터 가 보고 싶던 곳이라 만장일치로 결정했지만, 일몰시간까지 닿을 수 있을지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일몰은 가면서 어디서든 보면 될 것 같아서 부지런히 오던 길을 다시 돌아 나왔다. 검은 기름의 침범에서 다시 살아

난 아름다운 태안에 감사하고, 더욱 발전하기를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