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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동유럽(폴란드,체코,헝가리, 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

동유럽 5개국 여행기 4/비엘리치카 소금광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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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엘리치카(Wieliczka) 소금광산(Salt Mines)으로!

아침 6시 40분 기상,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7시 30분에 식사를 했다. 호텔 조식은 먹을 만했다. 부드러운

빵과 요플레, 특히 모짜렐라 치즈가 아주 맛있었다.

호텔 밖으로 나오니 오늘도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9시에 드디어 소금광산으로 출발했다. 세계자연유산

에 등록되어 있는 지하 130미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란다. 열차관광으로 태백의 갱도관광을 해 본 적은

있지만, 소금광산은 광산은 과연 어떨지 무척 기대되었다. 가는 도중 가이드의 안내는 계속되었다. 폴란

드에서는 무조건 기다려야만 한단다. 사회주의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에 자유시장경제 체제

에서처럼 서비스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것, 특히 관공서나 가게 등은 점심시간이 따로 없고 일정 시간

일하고, 쉬는 시간이 짬짬이 주어지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는 절대로 일을 봐주지 않는다고 한다. 특히

은행 업무 볼 때 불편을 느끼기 일수란다. 그리고 직업의 종류에 따라 별 소득차이가 없기 때문에 빈부

격차를 못 느낀다고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로 전환된 만큼 부유층 5%는 당원, 성주, 보따리무역에서 발전한 기업들은 정해져 있는

편이고, 15%정도는 비즈니스 및 개인 병원 닥터 중 소아과, 산부인과, 치과 의사들이 그 다음 부류를 차

지하고 나머지는 거의 비슷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자녀 교육은 대학까지 무료이고 65세이상은 연금이

나오므로 생활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고 산다. 그러므로 서비스의 필요성을 못 느끼는 실정이나 부분적

으로는 변화가 될 것이지만, 현재까지는 기대하면 손해란다. 실제로 어제 시내에서 가게들을 방문해도

호객이란 건 전혀 없었고, 계산하는데도 바쁜 것이 없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관광지 사람들은

아주 많이 변화한 것이라고 한다.



호텔 아침식사

소금광산 외부 건물

내부 입장실

역사를 알려주는 안내판

세계 12대 관광지에 속한다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소금광산에 도착했다. 다른 규모와 역사에서 차이가

엄청나다. 비엘리치카 동굴의 길이는 총 300km나 되고 역사도 700년이 넘어선다. 125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업이 계속된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고 한다.

겉으로 보기엔 아름다운 건물들이 여기저기 보이는 작은 마을처럼 보이는 곳인데, 한 쪽에는 목조로 된 건

물이 있었고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대편에 아이보리색 건물에 하얀 색이 산뜻하게 간혹 칠해져 있고

지붕은 2-3층으로 된 지붕이 있는 건물이 보였다. 가이드가 표를 끊어 와서 기다렸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벽에 광산에 대한 설명이 붙어 있었다. 독일말도 아니고 폴란드식 말을 읽을 줄 몰라 해석이 어려웠다.

뭔가를 읽을 수 없다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긴 통로를 따라 들어가니 지하 64미터까지는 마냥 걸어 들어가

야 한단다. 나무 계단을 끝없이 내려간다. 가이드는 쓸데없이 계단 수나 헤아리지 말라고 378개라고 알려준

다. 가파른 계단을 하염없이 내려간다. 자칫 잘못하면 헛디딜 수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내려가는 길엔

나무 계단과 나무로 된 통로, 그리고 소금벽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가는 곳곳마다 사람들의 낙서도 많다. 한

국인이 적어놓은 낙서도 있다. 어느 시점에 다다르니 시멘트바닥 같은 곳이 나오고 벽 역시 시멘트벽 같은데,

그 모두가 소금이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소금조각

갱을 바치기 위한 침목

소금 바닥

통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벽을 긁어보면 소금이 긁혀진다. 곳곳에 문이 있는데 앞사람이 잡아주지 않으면

쾅 닫혀져서 열기가 힘든다. 곳곳에 조각품들이 즐비하다. 우선 광부들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근처에는

그들이 소금을 채취할 때 쓰던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다리, 밧줄, 도르래 기타등등……. 또 다른 통로

에는 통나무들이 차곡차곡 일정하게 쌓여 있다. 체크무늬 만들듯이 차곡차곡 쌓아서 굴을 지탱하고, 둥근

통나무들은 주기적으로 교체를 한다고 하는데, 그 모든 것이 다 기록되어 과학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 대단함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광부들이 공간을 활용하여 소금조각을 만들어 놓았는데 성인의

조각에서부터 그들이 존경하는 인물, 공주 등이 새겨져 있다. 대단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소금광산에만

3,000여 개의 방이 있는데 그중 20여 개의 독특한 방들이 일반에 공개 중이다.

지하 110m에 위치해 있는 킹가 성당(Chapel of Saint Kinga)은 소금광산 여행의 백미다. 20세기 초 30여 년

간 암염으로 만든 동굴에는 역대 왕과 샹들리에 조각들이 찬란하게 재현돼 있다. 광산에는 작은 연못도 있고

유럽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우체국도 있다. 마크 쿨란스키(Mark Kurlansky)는 그의 작품 ‘소금’에서 비

엘리치카의 역사적 가치를 담아내고 있다. 특히 곳곳마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암염으로 조각한 상들리에는

정말 예술이다. 크리스탈처럼 화려하게 빛나고, 연중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지금은 광산채굴을 하

지 않고, 관광수입만도 대단하다고 한다. 지금은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소금공장만 가동한다고 한다. 아무튼

다른 동굴들과는 차원이 다른 소금광산이다. 이런 채굴 기술을 공산주의체제 때에는 북한에 땅굴파는 기술자

들이 전수받아 갔다고 하니, 이 곳을 방문하는 우리로서는 아이러니컬 하지 않을 수 없다. 체제가 바뀐 지금

은 받지 않고 있다고 하니 천만다행한 일이기도 하다.

공주를 존경하는 모습

광부들의 모습

연자방아

킹가성당의 장엄한 모습

킹가성당 성인 벽화

벽화

소금으로 만든 샹들리에

광맥을 잇는 곳의 샹들리에

비엘리치카에 얽힌 얘기는 전설처럼 이어진다. 한번 광산에 들어온 말은 평생을 햇빛을 보지 못하고 땅

속에 머물렀다고 한다. 지금도 그 말의 조각상이 있는 것을 보았다. 한때 폴란드 왕궁 전체 수입의 3분의

1이 이 소금광산에서 나왔다고도 하니, 이 비엘리치카의 위상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동유럽에서는 ‘할

슈타트’, ‘짤즈부르그’ 등 소금이 나는 곳이 부를 누려왔다고 하는 말이 실감나기도 한다.

소금 기념품

소금 조각들

레스토랑

닭고기스프와

돼지고기 요리


올라올 때는 승강기를 타고 올라왔다. 지하 130미터가 되는 곳에서 올라오는데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현대식 엘리베이터가 아니고 구동식 같은 것인데, 참 신기했다. 두 대가 동시에 작동을 하여, 우

리 일행은 나누어서 타고 올라와서 만나니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기념 사진을 촬영한 후, 걸어서 주변

의 음식점으로 향했다. 쌀국수 같은 닭고기 스프에 역시 돼지고기 살짝 구운 요리에 버섯 소스를 곁들여

먹었다. 찐 감자 으깬 것 두 롤과 삼색 야채샐러드(양배추, 당근, 자주색배추)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이

나라는 돼지고기 요리가 거의 주식인 듯 했다.

가이드와 작별을 하고 우리는 슬로바키아 타트라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4시간이나 이동을 해야 하는 먼

여정이 계속되었다. 안개는 여전히 자욱해서 그 아름답다는 주변 경치는 그저 마음으로 느낄 수 밖에 없

었다. 뿌연 안개는 비까지 뿌려서 더욱 흐릿한 창으로 우울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가기

전에 보았으면 좋았을 영화인 ‘피아니스트’를 보았다. 인솔 가이드가 준비한 영화는 3편이 다 아주 감명

깊었는데, 피아니스트도 그 중 하나였다. 우리가 보았던 수용소 사람들의 삶이 짐작되는 시대적 배경, 주

인공의 기구한 운명 등에 푹 빠져서 울고 웃었다. 그 아름다운 ‘쇼팽의 야상곡’ 선율에 매료 당하기도 하

였다.

‘영혼을 움직이는 감동의 선율, 전쟁의 한 가운데 그가 있다!, 전세계를 울린 생애 최고의 감동!’ 그 영화에

대한 찬사 문구이다.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 유명한 유대계 피아니스트 스필만은 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쇼팽의 야상

곡을 연주한다. 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한창 타올라 그가 연주하던 라디오 방송국이 폭격을 당한다. 유대

인 강제 거주지역인 게토에서 생활하던 스필만과 가족들은 죽음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게 된다. 기차로

향하는 행렬 속에서, 평소 스필만의 능력에 호감을 가졌던 유태인 공안원이 그를 알아보고 구해 준다. 간

신히 혼자만 목숨을 구한 스필만, 몇몇 사람들의 도움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건물에 자신의 숨어 살게 된다.

어둠과 추위로 가득한 폐건물 속에서 먹을 거라곤 오래된 통조림 한 개로 숨어 살던 중, 순찰을 돌던 독일

장교에게 들키고 만다. 유태인 도망자임을 눈치 챈 그는 스필만에게 신분을 대라고 요구하자, 그는 자신이

피아니스트였다고 말한다.

한동안의 침묵 후, 그는 스필만에게 연주를 명령하고, 스필만은 온 영혼을 손끝에 실어 연주를 한다. 그 연

주에 반한 그 독일 장교는 묵인을 해 주고, 그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주고, 그는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는다.

얼마 뒤 독일이 패망하고 그 장교는 포로 신세가 된다. 스필만은 2000년, 8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바르샤바'에서 계속 살았다. 그 독일 장교는 포로수용소에서 1952년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나중에 그에게

알려진다. 참으로 감동적인 영화였다.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는 또 다른 풍경 속에 있었다.

휴게소 내부

빵 진열대

아름다운 주변 풍경

이색적인 털가죽판매점

휴게소 건물도 멋있었지만 주변 경치가 아주 좋았다. 특히 휴게소 옆에 있는 짐승들의 털을 걸어 놓은 가

게가 눈길을 끌었다. 젖소가죽, 양가죽 같은 것을 가게 옆 펜스에 걸어놓은 것이 눈밭을 배경으로 어찌나

아름답고 특이한지! 가게 안에도 가죽으로 된 장신구를 팔고 있는 듯 했고, 다른 쪽은 눈밭이 환상적이었

다. 끝이 보이지 않는 평원, 그 설원 속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그렇게 눈밭과 안개가 가는 내내 계속되었

고, 아름다운 산 속으로 접어들면서 설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안개에 가리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으랴?

버스는 운전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눈길을 계속 가게 되었으니, 그래도 그날 눈이 내린 건 아니었으므

로, 제설 작업이 잘 되어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