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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행/캄보디아 앙코르와트

8. 킬링필드의 눈물, ‘와트마이(Wat Mai)’ 사원, 서바라이(West Baray)호수와 민가 방문

8. 킬링필드의 눈물, ‘와트마이(Wat Mai)’ 사원, 서바라이(West Baray)호수와  민가 방문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호텔식으로 아침을 먹었다. 역시 전날과 거의 같은 메뉴였고, 일찍 짐을 챙겨 놓고 차에 탔다. 날씨가 어찌나 청명하고 하늘이 푸른지, 하늘을 자꾸 올려다보게 되었다. 호텔 정원에서는 아름다운 꽃들에 빠져들었다. 남국의 아름다운 꽃이 짙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눈부셨다. 이 날은 고적 답사보다는 캄보디아인들의 생활상과 근대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진행되었다.

 

 

 

맨 먼저 간 곳은 ‘와트마이(Wat Mai)’ 사원.

20여년 전에 ‘킬링필드(Killing Fields)’로 잘 알려진 캄보디아 내전 때 희생된 사람들의 혼령을 위로하는 사원이다. 당시 지식인들과 엘리트층을 대거 숙청하고, 인간으로서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만행이 잔행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고, 발굴된 해골과 뼈들을 쌓아놓은 탑도 있었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될 끔찍한 비극의 현장이었다. 캄보디아 정치가 폴포트(Pol Pot 1925~1998)는 중국의 지원을 받아 프놈펜을 점령하고 1976년 총리가 되었고, 프놈펜 함락 후 게릴라군 최고위원회 의장겸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가 캄보디아를 장악하면서 농업적 공산주의 사회를 주장하면서 반대세력과 지식인들을 학살하고 반동이라는 이름하에 대학살을 한다. 배운사람 (선생님, 의사, 공무원), 노동력없는 사람 (어린아이, 임산부, 환자), 상류계층 (양담배를 피는 사람, 안경 쓴 사람, 얼굴이 하얀사람) 이러한 기준으로 학살을 했다는데 정말 어이 없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영국의 데이비드 퍼터넘이 1985년에 제작했다는 Killing Fields 영화를 통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다시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앙코르와트의 장엄한 유적에서 본 바와 같이 대단한 왕국을 이루었던 ‘크메르제국’의 영광은 어디 가고, 오늘날 최빈국 대열에 오르게 된 캄보디아의 오늘을 초래한 민족 대학살이 아닐 수 없다. 너무 민망하고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숙연한 마음으로 망자들의 명복을 빌고, 이제는 캄보디아의 앞날이 밝아지길 기원해본다.

 

 

 

다음은 끝이 보이지 않는 서바라이(West Baray) 호숫가에서 잠시 멈추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서바라이 호수는 수리야바르만 1세때 축조한 앙코르 유적 중 가장 큰 인공호수이다. 당시의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식수와 농업용수를 위해 만든 것으로 현재는 주민들의 유원지로 사용되고 있다. 호수는 잔잔했고 수평선이 보였다. 관광객들이 내려서 관광하는 경우도 많은지 여전히 ‘1 달러’를 외치는 아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들이 귀찮아질 거라며 잠시 멈추기만 하고 설명을 했다.

 

 

 

 

 

 

 

 

그리고는 바로 가게 된 곳은 민가였다. 우리나라 모 방송사에서 봉사활동으로 ‘펌프’를 설치해준 집이기도 하고, 가장 전형적인 캄보디아 서민의 집이라고 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외관상으로는 너무나 아름다운 마을이 나타났다. 간간히 흐르는 실개천, 들판, 그리고 싱싱한 나무들과 곡식들이 적당히 익어가는 마을이었다. 목조건물이 있는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름다운 나무들에 둘러싸여 겉보기는 너무나 평화롭게 느껴지는 그런 집. 더운 지방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목조건물로 1층은 비어 있고 2층에서 생활하는 형태이다. 사다리를 타고 2층으로 올라 가니, 통짜로 쓰는 듯한 방에 아이들의 책상이 놓여 있고 책들과 학용품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다. 한 쪽에 작은 방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었고, 아마 침실인 듯 했다. 아이들 두 명이 수줍게 웃고 있어서 사탕을 두 개씩 주었더니 아주 좋아하며 사진 찍는 포즈도 취해 주었다. 이면으로 넓은 창이 나 있고, 한 쪽에는 쪽창이 나 있었다. 아이가 서 있는 창 밖 풍경은 그야말로 그림 같다. 아이들은 늘 손님을 맞아온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이런 방문으로 그들의 생계를 이어주는 수단의 일부가 되리라.

 

 

 

 

 

 

 

 

 

 

 

 

 

 

잠시 후, 들어올 때 팔찌를 들고 ‘1달러’를 외치던 동네 아이들이 도열해 있었다. 늘상 하던 행사인 듯, 그들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자연스럽게 우리 나라 가요를 불렀다. ‘만남’, 그리고 또 무슨 노래였더라? 두 곡을 연달아 부르고 사람들이 따라 불렀다. 그래서 일행은 그들에게 골고루 팔찌나 목걸이 등을 사주었다. 아이들을 내세우는 것은 정말 마음에 안들고 가슴이 아팠지만, ‘1달러’가 그들의 미래를 여는 작은 디딤돌 하나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호텔에 잠시 들러 사진 촬영을 하고, 로비에서 휴식을 취한 후 짐을 호텔에 맡기고 점심식사를 하러 갔다.

 

 

 

 

‘모두투어’에서 직접 경영하는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는 길에 씨엠립 시내의 여러 풍경들을 보았다. 하늘이 어찌나 맑은 지! 한겨울에도 땀이 줄줄 흘렀지만, 아름다운 자연은 그들의 보물 중의 보물이 아닐까 싶었다. 겨울에도 이렇게 더우니 소득이 낮아도 그나마 견디기 쉬울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아름다운 하늘과 아름드리 나무들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고 또한 부러울 것 같다. 3모작도 가능하다는데, 얼른 경제상활이 더 좋아졌으면 좋겠다.

 

 

 

 

 

 

 

 

 식당은 아마 이번 여행에서 가장 괜찮은 식사가 아니었을 지……. 캄보디아에서 가장 인상적인 꽃 중의 하나, 바로 부겐베리아! 서울대공원이나 인천대공원의 열대식물원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바로 그 부겐베리아! 열정의 꽃! 붉은 색이나 분홍색을 보았는데, 색깔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얀 부겐베리아도 너무 눈부시고 예뻤다. 식당 입구에서 사람들을 환영하는 화려한 꽃, 그리고 복스러운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