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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반달 외 3편/김여정 반달 김여정반달이 떴다하늘이 떴다조각배가 떴다바다가 떴다반달이 내 한쪽 심장을 먹어치웠다하늘이 내 생을 먹어치웠다조각배가 내 한쪽 심장을 다시 뱉아냈다바다가 내 생을 다시 토해냈다오늘 나는 조각배에 반달을 싣고남은 반달을 찾으러하늘 바다를 노 저어 간다달빛 레이저달개비꽃들이푸른 달빛 레이저를흐릿한 내 눈동자 속으로 쏘아댄다(아직 백내장 수술을 안 한 지구의 왼쪽 바다)내 눈썹 위의 달개비꽃빛 나팔꽃들이달의 알들을숨은 별들을 향해 발사한다우주 공간이 온통 레이져쇼로현란하다(백내장 수술은 이제 필요없다는 의사의 말)소금꽃제부도 바닷가 뻘밭에자줏빛 카펫을 깐 듯곱게 핀 꽃꽃 같지 않은 꽃우리말로 나문제꽃소금 먹고 자라는 소금꽃 보고한평생 가슴속에 소금 저리면서도조용한 미소 잃지 않고 산어머니 모습 떠올라 그리.. 더보기
쌍계사 죽비소리 외 3편/윤동재 쌍계사 죽비소리 윤동재쌍계사 벚꽃 길 벚꽃이 한창일 때벚꽃 구경 나섰다가벚꽃 손에 이끌려쌍계사까지 들르게 되었지요쌍계사 경내 들어서자갑자기 죽비소리가 쏟아졌지요벚꽃과 내가 깜짝 놀라어디서 나는지 둘러보았더니진감선사대공탑지 앞에서진감선사가 최치원의 두 어깨 위로죽비를 사정없이 후리치고 있었지요모든 것이 헛되니탑을 만들지도 말고비명을 짓지도 말라고 했건만어째서 탑비의 글도 짓고 글씨도 썼느냐고진감선사가 최치원의 두 어깨 위로사정없이 죽비를 내리치고 있었지요죽비소리가 지리산 쌍계사 골짜기를쩡쩡 울리고 있었지요이삭 성당러시아 빼쩨르부르그에 있는 이삭 성당서울대학교 노문과를 졸업하고빼쩨르부르그 대학에서뿌쉬킨 문학으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는가이드가 이마의 땀도 닦지 않고열심히 설명하고 있다"이삭 성당을 세우는데사십.. 더보기
뒤꿈치 자서전 외 3편/정순옥 뒤꿈치 자서전 정순옥여태 그들은 없었습니다그들을 찬찬히 본 적도 말하는 것을 들을 적도없었습니다 그래서존재하지도 않고 기록도 없는 그들이내겐 아직 선사시대일 뿐이었습니다그런데 우산 없어 잠시 서 있는 지하철 역 계단에서우루루! 맨얼굴의 그들이 떼로 쳐들어왔습니다.샌들이나 슬리퍼에 끼워져 가는 그들트고 갈라진 놈 옆에 오종종한 놈 하나 지나고 나면입 꽉 다물고 눈만 부라린 놈이 오고그 뒤를 힘없이 따라가는 놈이 있는가 하면장딴지 힘줄 세워세워 버팅기는 아우성도 들려옵니다어떻게 굴려왔을까 저 앞부리에 매달린 시간의 어깨들을하고 생각하는 사이 그들은 또 자꾸 밀려갑니다.지하로 내려오는 우산 발길에서툭툭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을 딛고서또 타박타박 계단을 오르고 있습니다저마다 뒤꿈치로젖은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이제야 .. 더보기
단시초短詩抄/강우식 단시초短詩抄 강우식1.생죽기 살기로 한사코 붙잡고 늘어지고 싶다.아무리 하나님이회초리를 든다 하여도, 죽어라말 안 듣는 초등학교 생도가 되고 싶다.2.사랑1바다 속땅 속몇 천 만자깊이유전은 발견하면서도몸속유전은왜 모를까.유전이다.내 가슴 속사랑의 샘이터졌다.기름값좀 받겠다.3.항로여자라는 무거운 짐을 싣고서난바다를 가는 듯 안 가는 듯 가는컨테이너 화물선 같은 사내. 사랑 때문에가끔 뱃고동 소리처럼 목젖 떨려도묵묵히 가야 할 항로가 있다.4.목숨이 있어목숨이 있어정관, 담석, 치질, 위암수술째고 자르고 꿰매고도끈질기게 살아왔다.목숨이 있어일, 경, 현, 숙, 옥, 문, 분, 등의 여자를사랑하고 헤어지는 것도살 아프게 살아왔다.목숨이 있어하늘만큼 바다만큼 살아온모든 업 내가 안고 죽는다.목숨 다한다는 것,.. 더보기
산경山經 /한광구 산경山經 한광구 산에 와 보니 산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와서 박히는 것임을 알았네. 내가 와서 산속에 박히니 풀도 나무도 저마다 와서 파랗게 자리잡고 물도 와서 모여서 흐르네. 하늘도 이렇게 와서 산속에 뿌리를 박고 산과 더불어 살고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네. 울창한 수풀들이 푸른 잎으로 자라 검붉은 몸뚱이로 잎새들을 바꾸며 땅속에 뿌리를 박고 하늘의 말씀을 읽고 땀처럼 눈물처럼 흘리는 물을 모아 산 아랫마을로 보내는 걸 비로소 알게 되었네. -2006년 한국시문학상 수상작-한광구(韓光九) 시인―경기 안성에서 출생 ―연세대 국문과 및 한양대 대학원 졸. 문학박사. ―74년 『심상』 등단. ―시집 『상처를 위하여』 『꿈꾸는 물』 『서울 처용』 『깊고 푸른 중심』 등. 소설집 『물의 눈』이 있음. ―현재 추.. 더보기
돋보기를 새로 맞춘 날/한기팔 돋보기를 새로 맞춘 날 한기팔가보고 싶은 곳 많으니기웃대다가안 보이는 곳까지 구석구석푸르게 바라보다가아, 그 고전적인 아픔아픔이 이처럼 환하다니만신창이가 되어 망가지다니내가 처음으로 돌아와금세 환해지다니하늘이 이처럼 구체적이다니-시집 '별의 방목'중에서한기팔 시인1937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출생했다. 1975년 '심상'으로 등단했다.시집으로 '서귀포' '불을 지피며' '마라도''바람의 초상' '풀잎 소리 서러운 날' '말과 침묵 사이' 가 있다. 2008년 5월 일곱번째 시집 '별의 방목'을 상재했다. http://blog.empas.com/yark77/17907626 더보기
별의 방목/한기팔 별의 방목 한기팔영혼이 따뜻한 사람은언제나 창가에별을 두고 산다.옛 유목민의 후예처럼하늘의 거대한 풀밭에 별을 방목한다.우리의 영혼은 외로우나밤마다 별과 더불어자신의 살아온 한 생을 이야기한다.산마루에 걸린 구름은 나의 목동이다.연못가에 나와 앉으면물가를 찾아온 양 떼처럼별들을 몰고 내려와첨벙거리다 간다.-시집 '별의 방목'중에서한기팔 시인1937년 제주도 서귀포에서 출생했다. 1975년 '심상'으로 등단했다.시집으로 '서귀포' '불을 지피며' '마라도''바람의 초상' '풀잎 소리 서러운 날' '말과 침묵 사이' 가 있다. 2008년 5월 일곱번째 시집 '별의 방목'을 상재했다. 더보기
타클라마칸/정복선 타클라마칸 정복선그때 좀더 강변을 걸을 걸 그랬다짧디짧은 사랑은 하지 말 일이었다꽃다운 스무 살의 호양나무 줄줄이 늘어섰던 강가모노아라 조개와 어여쁜 새의 둥지 위에삼천 년, 사천 년, 타클라마칸 사막의 모래바람,그대가 씌워준 흰 모자 새깃털 장식 그대로덮어준 양모 망토와 소가죽 신발에 얼룩진 그대 눈물옆구리에 넣어준 풀띠로 엮은 바구니 속엔그 밀밭, 그 파도그대가 만들어준 이승에서의마지막 선물 목선木船을 타고 나, 긴 잠 속너무도 질긴 바람望 속을 혼자서 항해해 왔다네루란에서 갈라지는 천산남로와 서역남로그 어름의 소하묘호양나무 가면假面 저리 뒹굴고미이라로 남은 몸내 이제 일어나서 타클라마칸, 사막을걷고 또 걸을 지라도그대 사랑은 하지 말 걸 그랬다 더보기
틈/김기택 틈 김기택튼튼한 곳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도숨쉬고 돌아다닐 길은 있었던 것이다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 빛을 우겨넣고버팅겨 허리를 펴는 틈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 수십 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본다아아, 얼마나 느리게 그 틈은 벌어져온 것인가그 느리고 질긴 힘은핏줄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 있다서울, 거대한 빌딩의 정글 속에서다리 없이 벽과 벽을 타고 다니며 우글거리고 있다지금은 화려한 타일과 벽지로 덮여 있지만새 타일과 벽지가 필요하거든뜯어보라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순식간에 구석구석으로 달아나 숨을그러나 어느 구석에서든 천연덕스런 꼬리가 보일틈! 틈, 틈, 틈, 틈틈틈틈틈.......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사실은 한 줄기 가냘픈.. 더보기
달마도 달력, 눈밭 이승에 입맞추다/한이나 달마도 달력 외 1편 *문창 2008년여름 한이나 달력 달마도를 천,천,히, 넘겨 본다 제 벽을 향해 앉아 살아 있는 모든 인연을 멈춘 달마대사 선정에 든 정신이 몸에서 벗어났다가 돌아오니 벗어놓은 몸이 온데간데 없다 나도 벗어놓은 몸을 찾아 헤맬 때가 있다 강가강의 불과 물로 영혼을 씻어낸 흐린 불빛이었다가 산사 목탁구멍 속 독경소리이었다가 남자 몸 속으로 들어가 환골 탈태한 그림자이었다가 대청호 수몰된 물 속 물고기 학교 1학년 교실 스무 살 무렵이었다가 돌아와도 여전히 낯선 내 몸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 온 상전이 된 내가 아닌 바뀐 초로의 몸 벗어놓은 몸이 온데간데 없다 나는 내가 아니다 눈밭 이승에 입 맞추다 명은 길어지고 삶은 남루해져 더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일 때 낭파라 깎아지른 절벽의 고개.. 더보기
나무 자전거/이영식 시낭송 동영상http://video.naver.com/2007100709385060088나무자전거/이영식 나무로 만든 자전거 한 대 갖고 싶네 핸들과 페달, 바퀴까지 나무로 깎아 붙인 자전거로 노을 속을 가고 싶네 느릿느릿 해거름 저녁 저어가다가 온몸 밀고 당기는 달팽이 길도 내어주고 한자두자 재며 가는 자벌레들 행진도 기다려주며 늘보걸음 기우뚱거리는 푸른 자전거, 나무로 만든 자전거를 타고 싶네 폭죽 터지는 순간 스쳐 지나고 풀씨 같은 별들 외로움으로 돋아 올라도 나무바퀴는 게으름의 속도를 탈피하지 않으리 물렁뼈 같은 시간, 느리게 더 느리게 그리움의 노를 저어 가다보면 핸들에서 싹이 트고 바퀴살에 잎이 돋아 달팽이와 자벌레 숨결도 옮겨 붙는 꿈의 나무저전거 내 몸도 온통 푸른 물이 든 채로 부치지 못.. 더보기
햇살이 가사 한 벌을 거두다/주경림 햇살이 가사 한 벌을 거두다 주경림밤새도록 봄비가 내리고 개인 다음날, 관음석상이지금 막, 눈 비비고 깨어나는 아침 햇살을 불러길상사 뜨락에서 젖은 옷을 말리고 서 계십니다젖어서 무거웠던 보관이 가뿐해집니다왼쪽 어깨를 감싸안았던 농묵의 가사 한 자락이차츰, 중묵, 담묵으로 볕 바래더니 스스륵 흘러내려무릎께 이르러서는 파필,촘촘했던 천의 자락의 주름도 흩어져 버립니다이제, 햇살 한 가닥이 편단우견의 겉가사를 거두어가고화강암 고유의 회백색으로 말갛게 드러났습니다맨발 아래, 미처 마르지 못한 빗물이 질퍽하게 고였습니다나는 질퍽한 슬픔 한 덩이로 시커멓게 엎드렸습니다관음석상 뒷편으로 개나리꽃이 화들짝 피어났습니다개나리꽃, 후불탱화 속에 수많은 부처님이천수 천안의 노란 꽃송이들을 흔들며말갛게 비치는 속가사마저 벗.. 더보기
사랑을 복원하다/주경림 사랑을 복원하다 주경림속살이 버드나무빛으로 막 물오르기 시작한페르시아 여인, 코발트빛 짙은 입술에는멀리 아리비아해의 물결이 넘실거린다파도 한 줄기가 청색 유리실 목걸이를 남겼다허리 아래 풍성한 치마 밑으로 드러난 발목이 애처롭다그녀가 새처럼 오므린 입술을 열어 코발트빛 바다를 쏟아낸다어느 누구도 그 사랑을 거두는 이 없어 긴 세월 묻혀 있어아득히 잊혀졌다가...황남대총 출토 국보 193호 봉수형鳳首刑 유리병,발등까지 깨진 아픔을 딛고깨어진 조각들을 용케 끼워맞춰 서 있다이제, 조각조각의 상처는 아픔을 넘어그물무늬 장식으로 그녀의 생애를 온전히 받쳐준다우리 사이 깨진 사랑, 묻혀버린 사랑도저렇게 아리따운 모습으로 복원될 수 있을까금실을 감아 수리한 손잡이를 들자오래오래 발효된 사랑은 묵은 술처럼독하다, 향.. 더보기
폐타이어/함민복 폐타이어 함민복구르기 위해 태어난 타이어급히 굽은 길가에 박혀 있다아직 가 보고 싶은 길 더 있어길 벗어나기도 하는 바퀴들 이탈 막아주려몸 속 탱탱히 품었던 공기 바람에 풀고움직이지 않는 길의 바퀴가 되어움직이는 것들의 바퀴인길은 달빛의 바퀴라고길에 닳아버린 살거죽모여모여몸 반 묻고드디어 길이 된 더보기
꿈속의 강변/문효치 꿈속의 강변 문효치 아무도 보이지 않는 널따란 대낮이었다. 소년은 강바람 속에서 머리칼을 날리며 어린 꿈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만경강 어구 뻘밭에 무성한 정숙을 쪼개내어 툼벙퉁벙 강물에 던지고 있었다. 무릎에 차오르는 밀물에 문득 짧아진 하루를 법으로 만나며 기어오르는 강둑으로 미류나무는 다가와 있었다. 하늘 한가운데 쯤 까치집을 틀며 소년의 풋풋한 꿈을 품고 있는 나무는 눈부신 푸르름 속을 수많은 팔을 뻗어 저어가고 있었다. 저 멀리 초가집 마을은 굴뚝에 길다란 깃발을 늘어뜨리며 안개속을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언덕 밭을 올라가는 옥수수는 수염이 하얗게 세고 수년의 꿈은 옥수수 알갱이 속에서도 톡톡 튀어나오고 있었다. 더보기
공갈빵이 먹고 싶다 /이영식 공갈빵이 먹고 싶다 이영식 빵 굽는 여자가 있다 던져 놓은 알, 반죽이 깨어날 때까지 그녀의 눈빛은 산모처럼 따뜻하다 달아진 불판 위에 몸을 데운 빵 배불뚝이로 부풀고 속은 텅- 비었다 들어보셨나요? 공갈빵 몸 안에 장전 된 것이라곤 바람뿐인 바람의 질량만큼 소소하게 보이는 빵, 반죽 같은 삶의 거리 한 모퉁이 노릇노릇 공갈빵이 익는다 속내 비워내는 게 공갈이라니! 나는 저 둥근 빵의 내부가 되고 싶다 뼈 하나 없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 몸 전체로 심호흡하는 폐활량 그 공기의 부피만큼 몸무게 덜어내는 소소한 빵 한 쪽 떼어 먹고 싶다 발효된 하루 해가 천막 위에 눕는다 아무리 속 빈 것이라도 때 놓치면 까맣게 꿈을 태우게 된다고 슬며시 돌아눕는 공갈빵, 차지게 늘어붙는 슬픔 한 덩이가 불뚝 배를 불린다. .. 더보기